(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69. 최초로 선보다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69. 최초로 선보다
이영백
우유는 이미 쏟아졌다. 아버지 생전 때 10월 농번기에 집에 들렀더니 “중학교 나온 안강(安康) 처자와 결혼 하라”는 것을 뿌리쳤다. 초등교사하면서 중등준교사(국어) 시험공부를 하였다. 그해 12월 20일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다고 돌아앉았다.
한 분 남으신 어머니의 심기를 불효하였다. 1974년 2월 23일 토요일 봄방학 종업식을 하고 고향으로 왔다. K여상 K교장선생님께서 나를 중매한다고 성화로 연락 왔기에 들렸다. 사랑채에 어머니 혼자계신 방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다. 꿈꾸었다. 백발노인 한 분이 나타나서 성냥 한 통을 주었다. 성냥 알맹이 하나를 빼내어 불을 켰다. 그러자 순간에 통 전체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잠을 깼다. 꿈이 이상하다. 그래도 꿈 이야기는 함묵하였다.
이튿날 대구시내 모여고 학교이사장 딸을 중매하여 준다고 K교장선생님과 함께 경주역전 소재“여보다방”에서 만나 버스 탔다. 대구 도착하여 대영학원 곁에 또 “여보다방”으로 갔다. 교장선생님은 나 혼자 기다리게 해 놓고 돌아오지를 아니하였다. 세 시간이나 후딱 지나 전화가 왔다. 처음 계획한 처자가 아니고, 새로 정한 처자와 선본다고 늦었다하였다. 택시를 탔다. 대구 한일아케이드 앞 빵집에 들어갔다. 선보는 장소였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렸다. 생전에 선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때로는 성사가 안 될 것으로 미리 예측하였다. 이발도 하지 않았으며, 걸치던 양복에 땅 고개 흙 묻은 구두 신고 촌 학교선생 티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문 밀고 들어오는 처자는 훤칠하고 위압을 주었다. 어머니 되는 분과 교장선생님은 나가고 둘만 앉아 대화를 이었다. “결혼 조건은 남자 형제가 없어 맏이이기에 부모생전에 잘 돌아봐 줄 수 있으면 된다.”고 하였다. 나로서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겼다. 그리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 대구 친구 집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이튿날 오전 10시까지 최종적으로 전화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친구 집에서 아침을 얻어먹었다. 검은 색 전화의 벨소리를 기다렸다. 커다랗고 길쭉한 괘종시계 부랄이 오전 열 시 종을 세게 쳤지만 끝내 전화는 없었다. 허허로웠다.
선이라는 것을 최초로 보고나서 기대도 않았지만 상당히 자책하고 괴로웠다. 학교 선생노릇을 더 열심히 하였다. 밤이면 못 먹던 술도 마셨다.
(20220113.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