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60. 너른 밭의 추억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60. 너른 밭의 추억
이영백
고향에서는 밭이 귀하였다. 경주분지 가장자리인 불국사지역에서 논 이외에 밭을 경작하고 산다는 것은 곧 마음에도 부잣집이다. 사실 논이 거개인 고장에 밭에서 채소와 과일을 가꾸고, 그곳에서 생산된 것을 먹는다. 나머지는 이웃에 나눠 주거나 남으면 팔아서 돈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집 사천 평, 작은 집 사천 평으로 밭을 가진 집이다. 우리 집에는 너른 밭에다 셋째 형이 온갖 작물(특히 담배, 참외, 수박, 오이, 콩, 팥, 들깨, 참깨 등)을 생산해내었다. 그러나 작은 집에서는 작은 아버지가 소심하여서 그런지 콩밭이나 조밭으로만 활용하였다. 작은집 밭둑에는 고작 참깨, 들깨 정도를 심어 우리 집보다 소득이 늘 적었다.
아버지는 둘레 밭둑에도 그냥 두지 않고 서쪽 도랑가에는 버드나무, 북쪽에는 고욤나무, 동쪽에는 작은 집 밭둑 경계선에 뽕나무, 감나무, 우리 집 둘레 각종 나무(뽕나무, 가죽나무, 감나무 등)를 심어 두었다. 북쪽에는 특히 대나무가 숲을 이루어 바람이 많이 불어오면 바람소리 무서웠다.
너른 밭에는 무와 배추를 심어놓아 가을철이면 김장을 하고도 남아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논농사도 많았지만 너른 밭에 해마다 윤작(輪作)하였다. 또 콩 위주나, 팥 위주로 농사짓기도 하였다. 간혹 특수 작물인 담배농사도 벌이어 일을 더 많게 만들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초교 4학년 늦가을 보리밭에서 흙덩이 으깨는 끙게 질을 한다. 무거운 돌 대신에 끙게에 나를 타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호시 타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밭두둑에 와서 빨리 내려야 하는데 멈칫거리다 황소뒷발에 내 코를 차이고 말았다. 순간 죽었다. 비상약은 없고, 엄마는 급하다 보니까 빨간약 소독제 아까징끼를 가져다 아버지께 드렸다. 너무 급하다보니 통째 들이부어 차가우니까 내가 깨어났다. 도깨비 얼굴이 되었다.
학교 갔다 오는데 난데없이 너른 밭에다 소한들에서부터 집까지 도랑을 만들어 밭이었던 곳에다 물 가득 실었다. 그해 그렇게 밭에다 모를 심었다. 그 다음해는 날 가물어 물을 못 구하여 다시 밭이 되고 말았다.
셋째형은 매년 돌려가며 너른 밭에다 실험하듯 농작물을 심었다. 그 너른 밭에 곡물, 채소들이 여러 색으로 꽃피웠다. 겨울이면 수확하고, 무구덩이 배추움막뿐이다. 마치 하얀 눈 덮인 에스키모 사람들의 이글루다.
(20211228.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