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40. 밀개산골 다랑이 논

청림수필작가 2021. 11. 23. 00:06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40. 밀개산골 다랑이 논

이영백

 

 우리 집에서는 여러 곳에 논농사 짓고 있다. 논은 소한들, 새보, 위시래, 아래시래, 박석골, 소전, 밀개산골 등에 산재하고 있다. 이 중에서 밀개산골 논은 특이하다. 논은 한 마지기(200평)인데 논 도락 수가 열일곱 개다. 그것을 다랑이라고 한다. 비탈진 곳이므로 논바닥지형에 따라 논둑을 만들다 보니 저절로 논둑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밀개산골 다랑이 논에서는 추석 전에 추수하여 그 쌀로 메 올린다. 산골이라 들판처럼 태풍이 몰려오지 않아 볏 대가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벼 낱알도 실하다. 샛노란 낱알은 참 오지다. 잘 익어서 밥맛을 돋운다.

 밀개산골 논에도 벼가 배동바지 하면 그 산골까지 참새들이 햇곡식 맛을 알고 찾아온다. 초교 다닐 때 아버지는 “오늘 학교 마치고 곧장 집으로 오지 말고 다랑이 논에 새 보고 오라”고 한다. 동해남부선 철길에서 바로 우리 산이다. 비 정기시간에 부산-포항구간의 화물기차가 지나다닌다.

 일제침략기에 동해남부선 기찻길 만들면서 돌이 필요하다고 깨트린 바위 바닥에 앉아 참새 오는 것을 지킨다. 아버지가 새 쫓기 쉽도록 새끼줄을 연이어 세운 막대에다 빈 깡통을 달아 놓았다. 다랑이논둑으로 내려오거나 나다니지 않아도 새끼줄을 당기면 “땅~그랑! 땅~그랑!”쇳소리가 난다.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에 간혹 산새소리 들린다. 우는 뻐꾸기는 “기집 자슥~ 다 죽고서~!”소리 낸다. 마치 사람이 슬피 우는 듯 어휘를 구사하는 소리에 질겁하고 만다. 하필이면 새가 사람 말처럼 소리를 구사하는 것에 겁나게 질린다. 참새도 없는데 무서워 공연히 새끼줄 당겨댄다.

 소나무그늘 밑에 앉아 지키면 졸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에 엄마가 산밭으로 온다. “복이 새 보나?” “예. 엄마, 왜 왔어요?” “산밭에 채소 뜯으러 왔지. 새가 꼭 해질녘에 몰려온다.” “예. 알았어요,”

 차마 혼자 밀개산골 다랑이 논에 있기 어렵다고 말 못하고 엄마의 부탁을 들어 주어야 하였다. 아버지의 명령을 새겨야만 하였다. 산골짝 낮 시간은 평지보다 산그늘이 일찍 다가온다. 토함산이 지척이다. 십 리 길이다. 기차역에서 절로 올라가는 신작로가 훤히 보인다.

 요즘은 다랑이 논도 모두 평지가 되었다. 그곳에는 오늘날 취송(翠松)공 증조부, 만호(曼瑚)공 할아버지, 송명(松明)공 아버지 산소가 있다.

(20211123.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