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37. 셋째누나 갠달마을에 살다

청림수필작가 2021. 11. 18. 00:58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37. 셋째누나 갠달마을에 살다

이영백

 

 형제자매가 많아 할 이야기도 참 많다. 어쩌면 형제자매 중에 셋째누나만치 함께한 시간을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셋째누나가 어디 갔는지 몰랐다. 나중에 안 사실로 부산에 큰 이모님 댁에 부엌 숙이 하러 갔다. 그곳에서 오래 있다가 견디지 못하여 넷째누나와 자리바꿈한 것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정들자 이별이라고 4학년 때 그만 월성군 외동면 녹동리 성저마을(城底, 성밑)로 시집을 갔다.

 셋째누나는 천성이 부지런하였다. 매형은 현역군인일 때 장가를 와서 고향에서 정미소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정미소 일은 힘들고 시대에 맞춰 봉급자가 되고자 원하였다. 그러나 학력이 깊지 아니하여 교육청을 통하여 고용직(기능직)으로 직장을 얻었다.

 내가 고교 1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이면 입 벌이를 위하여 셋째누나 집에 들러 생질들을 공부 가르쳐 준다는 핑계로 찾아가 지냈다. 겨울방학에는 추워서 울산 넷째누나 집으로 갔다. 나도 체면 없는 사람이다. 참 무서운 빈대가 되었다. 모두가 아버지 신학문 못하도록 한 덕택(?)이었다.

 셋째누나는 학교사택에 살면서 동물(염소, , )도 키우고 선생님들 하숙도 치렀다. 매형의 기능직 봉급으로는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아들 둘, 딸 셋 시집장가를 보내고 그렇게 알뜰하게 살림살이를 하였다.

 셋째매형은 학교근무 중에 과로로 그만 57살 정년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셋째누나 살림살이가 참 팍팍하게 되었다. 용하게 딸을 공부시켜 큰 딸은 기능직 공무원이 되었고, 막내딸은 전문대학을 졸업하여 시집을 갔다. 큰 아들은 결혼하여 현대중공업에 취직하였다. 일찍 매형을 보내고 어려운 살림에 논밭 사고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갠달마을에 살고 있다.

 많은 형제자매 속에 모두가 형편 잘 풀리어 잘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사람 삶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다 되든가? 일찍 홀로 되셨기에 대구에서 자주 들러 동생이 오간다는 것을 이웃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상북면에는 비구니 절 석남사(石南寺)가 있다. 그곳은 고교 때부터 일찍 다녔다. 특히 여름이면 석남사 입구 너럭바위에서 물놀이 하는 것이 좋다. 뿐만 아니고 본래 언양(彦陽) 미나리가 좋아서 미나리전이 유명하다. 셋째누나 이제 연세도 많아지고 건강이 걱정이다.

(2021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