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제2부 삶의 환희 11. 오포소리 듣다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제2부 삶의 환희
11. 오포소리 듣다
이영백
어린 날 목가적 농촌에서 살다. 그러나 정확한 시간을 알 수가 없다. 동네 부잣집의 어른은 왼 팔목에 금빛 나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 공연히 자랑하고 싶으면 누가 시간을 묻지도 않았는데 왼손의 소매를 걷어 올려 “몇 시 몇 분이구나”라고 말하곤 한다. 참, 시계 하나로 거들먹거린다. 그러나 그 시대 손목시계 값은 참 비싼 줄로만 알았다.
시계하면 농담을 자주 하곤 하였다. 시계방에 가서 괘종시계 하나 사면서 손목에 거는 손목시계를 덤으로 달라고 한다. 사장님 왈 “괘종시계 열 개 값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시오.”라고 태방만 듣다.
시계가 없던 시절이다. 좀 산다하는 집에서는 커다란 부랄 마냥 달린 괘종시계가 걸려 있다. 우리 집에는 그런 괘종시계도 없다. 배가 고프면 밥 먹고, 정확하게 몇 시 몇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다. 새벽 첫 기차 지나가면 오전 네 시요, 아침 경주 가는 통학기차는 7시 반이다. 열한 시쯤 부산 내려가는 기차가 또 있다. 그러나 봄, 가을이면 부정기적으로 수학여행단 열차가 수시로 다녔다. 기관차기적소리가 시계였는데 혼란을 일으킨다.
한낮이면 따사로운 햇발로 인하여 낮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수탉이란 놈이 시간 정하여 울지 않고, 수시로 울어서 시간을 대중할 수 없다. 또 마당에 생기는 감나무 그림자나 빨래를 늘어 두는 바지랑대 그림자도 시계역할을 톡톡히 하여 준다.
낮에 가장 적확한 시간이 하나 있다. 정확하게 낮 열두 시면 지서에서 오포(午砲)인 사이렌이 운다. “애~앵~~~~~!”하는 그 소리는 사하촌 불국사지역 가근방에서는 모두 들린다. 오포시각이 제일 정확한 시간 알림이다.
오포는 어디에서 울리는지 오전부터 찾아가서 지서 곁을 지켰다. 그러자 정오에 지서 옆 소방서 건물 위에서 “오~오 옹~”하면서 소리 내었다.
어린 날은 배고프면 밥 먹는 시간인 줄 알고, 그렇게 살았다. 특별히 몇 시 몇 분까지 알 필요가 전혀 없다. 무슨 시간을 정해 놓고 약속할 필요도 없으니 그렇게 사는 것도 가능한 시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포는 인천에 거주하던 해군에서 쐈다. 그러나 그 포는 낡고 정확한 12시에 알리지 못하게 되다. 급기야 오포는 사라지고 사이렌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그래도 사이렌소리를 오포라고 부른다.
(20211003. 일. 개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