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9. 왕밤나무 아래에서

청림수필작가 2021. 9. 30. 00:09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9. 왕밤나무 아래에서

이영백

 

 아버지가 손수 심어 잘 자라던 것을 넷째 형 한 마디에 아름드리 왕밤나무가 베어졌다. 큰집에서 관리하다가 큰형과 형수 모두 돌아가고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 밤은 열리는데 설익었을 때는 달려 있다가 벌레 먹고 나면 썩은 밤알이 되고 만다. 아름드리 몸통은 탁자를 만든다더니 몇 해가 지나도록 방치되었다가 사라졌다. 왕밤나무는 그렇게 흔적도 없어졌다.

 아버지가 1957년에 선산한다고 경주 법주공장 터인 밭을 산과 대토하였다. 초교 다니기 전 새벽에 콩 꺾었던 곳이다. 까마득한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산소를 모시고자 차성이씨 38世 만호(曼瑚)공 소문중의 선산으로 구매한 것이다.

 그곳에는 한 마지기 논, 열일곱 도가리 다랑이 논이 있었다. 초교 다닐 때 모내기도 하였고, 깬 바위 위에서 참새 쫓기도 하였다. 해마다 그곳 산골짝 벼는 샛노란 벼가 잘 익어 추석 때 메로 사용하였다.

 일찍 선산에다 왕밤나무 모종을 사다 심어서 자라니 왕 밤알이 달려 가을이면 대나무 활대와 집게 들고, 자루 하나면 왕밤 땄던 시절이 있었다. 그 왕밤으로 제수도 사용하고, 두고두고 구워 먹고, 밤밥으로도 해 먹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는 큰 형수 욕심내어 자기 밤나무라고 손도 못 대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돌아가고 관리하지 아니한다. 부모산소 앞 왕밤나무가 제일 굵게 잘 자랐다. 매년 벌초할 때마다 그곳에 자연의 정자처럼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던 곳이다. 갑자기 산소 앞을 가린다고 조카들을 동원하여 넷째 형 한 마디로 성목인 왕밤나무 베어 버렸다.

 우선은 부모님 산소 앞을 가려 있다가 베어 버리고 나니 훤하여 좋긴 하다. 그러나 우리가 앉아 놀던 왕밤나무 자연정자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대신에 넷째 형이 간이휴게소 만들어 둔 곳까지 짐 들고 올라가야 한다.

 성목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었는데 베기는 수 분만에 베어 버린 것이다. 그 왕밤나무는 해마다 많은 알밤을 달려주었다. 왕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해마다 찾아왔던 곳이었는데 이제 베어져 사라졌다. 너무 섧다.

 선산에 왕밤나무가 사라지기 전에는 해마다 벌초 때에 외손들까지 일흔 여명이 오다가 이제 일곱 명 전후 참석한다. 격세지감이다.

 왕밤나무의 효과가 사라진 것인가? 금년 코로나19로 겨우 일곱이다.

(20210930.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