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3. 조무래기들 놀다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3. 조무래기들 놀다
이영백
어린 날은 물에서 놀며 자란다. 대여섯 살 또래들 동네 앞 큰 도랑물에서 놀았다. 백사장에서 모래집 짓고 놀았다. 동네 고작에서 놀았다. 인생에서 대여섯 살은 참 한가하였다. 집안에서 일하라는 것도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 그냥 놀면 되었다. 그것도 햇발이 쨍쨍 내려 쪼이면 찡긋 한 쪽 눈 감고 큰일 하듯 모래집 짓고 놀았다. 그렇게 유년기는 참 환희였다.
보슬비가 내려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조무래기들이 모여 술래잡기를 한다. 그것이 무어 그리 재미났던지 가랑비에 옷 젖어도 모르고 고작에서 깡통 차기 놀이하였다. 담 아래 호박 줄기가 기어 올라가 담 위에서 가지 벌어 온통 잎으로 덮인다. 놀고 있는 아이들 속에 나도 섞이어 있다.
여름 오면 큰 도랑물을 건너 상보 용천에 들어가 논다. 위쪽에는 남자 조무래기들이, 아래쪽에는 여자 조무래기들이 모여 물장구치며 논다. 깊은 물이라 뜨고 싶었다. 새끼줄로 보릿단을 묶으면 보릿대 공간으로 부유물이 된다. 그걸 붙잡고 물장구친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태워주었다.
누가 정지(부엌)문짝을 떼어 오자고 하였다. 우리 집에 가서 떼쓰고 어찌해서 정지문짝을 들고 왔다. 띄어 놓고 올라가 앙증스러운 팔로 저어댔다. 그것이 그렇게 즐거울 줄을 몰랐다. 재미나게 놀고 나니 물에 불어서 들고 오지를 못하였다. 큰일 났다. 빨리 집으로 갖다 부엌에 걸어두어야 하는데 어린 우리들이 들 수가 없다. 정지문짝을 집으로 몰래 옮기는 방법은 머슴을 동원하였다. 지게에 지고 가서 아버지 몰래 감쪽같이 달아 놓았다.
물가에 놀지 않으면 수양나무 위에 올라가 백사장 아래로 뛰어 내리기도 하였다. 아래에는 어른들이 일하고 쉬려는데 모여서 떠들어대니 성화가 났다. 모두 쫓아버렸다. 심심하다. 우리가 놀 장소는 없다. 그래도 동해남부선 증기기관차 미카129가 제 시간을 잘 지키며 기적소리 내며 지나간다.
놀이시설이 없다. 모두가 논이고, 도랑가며, 백사장이다. 수양나무 그늘에서 나무타기 하였다. 고작에 떠나가도록 떠들며 놀았다. 차츰 소년으로 자라려는 성장 통이다. 이제 소년으로 가는 시기에서 자유와 책임이 늘어났다. 공부하려는 시기 전이지만 공부하려는 학동기로 접어들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골에서도 조무래기들로 모여 잘 놀고 기쁨으로 지난다. 조무래기로 자라면서 담벼락 위 둥근 호박만큼의 추억을 쌓아갔다.
(20210919.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