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91. 다시 찾는 고향

청림수필작가 2021. 7. 27. 00:50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91. 다시 찾는 고향

이영백

 

 고향을 왜 찾는가? 부모님이 살았던 곳이요, 내가 태어나서 어린 날 추억이 서린 곳이기에 추억의 창고를 찾아가는 것이다. 마치 “추억의 달동네”마냥 나의 어린 날 고향을 수시로 찾아 나선다.

 드론타고 내려다본다. 동으로는 동해의 찬 공기를 막아 주는 토함산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굳이 신라 탈해왕의 다른 이름이 토해라고 안 불러도 동해 공기를 마셨다가 토해 내니 “토함산(吐含山)”이다. 세계문화유산 불국사ㆍ석굴암이 그 산 중허리에 안겨있다. 불국사ㆍ석굴암은 수학여행지다. 그곳은 신라의 건축술과, 부처님 말씀 듣는 자리에 석가탑, 일상에서 보물처럼 함께 있는 다보여래로 솟아오른 다보탑이 있다. 석굴암 본존불이 있다.

 서로는 가까이 마석산 기암이 있고, 멀리 묵정산 치술령에 박제상의 슬픈 역사가 서려있다. 부인이 자식 둘 데리고 부군을 기다리다 지쳐서 돌이 된 망부석이다. 고향에서는 전설ㆍ설화 등이 주저리주저리도 열려 있다. 고개, 못, 돌, 바위, 탑, 절터 하나에도 전설이 아름다이 매달려 있다.

 북으로는 경주분지에서 식량을 얻는다. 그림 같은 조양 못이 기다린다. 본래 못이 아니었는데 터가 좋아 국가에서 땅 파고, 물 채워 역적이 나올 것을 방비한 곳이다. 인터넷에서는 “대재지”라 바꾸어 버렸다. 또 구릉으로 낮은 개남산이 자리한다. 신라 궁궐을 지으려 산새를 보아 그곳을 안산으로 생각하였는데 너무 협소하여 포기하였다. 산 이름도 “개남산(介南山)”이라 바꾸었다. 인터넷에서는 “뒷산”이라고 적어 두었네.

 남으로 동대봉산에 빗대어 작은 구릉 선산 있는 곳을 밀개산이라 한다. 산 에둘러 상보(上洑) 머리에서 물 흘러 보내어 들판의 젖줄 된다.

 고향 어디에도 이야기가 많다. 네 번째 살았던 곳은 일곱 개 보중에 가장 늦게 만들어진 “새보”다. 온통 녹색으로 뒤덮은 들판 가운데 아버지의 혜안으로 터 잡고 살아왔던 곳이다. 곁에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를 직접 유치한 것과 전기 없던 마을에 전기 넣게 된 일에 관여한 것이 내 생애에 가장 잘한 일이다. 그래서 보고 싶은 고향을 자주 찾는다.

 고향 찾으니 발전 안 된 곳이 더 자연스럽다. 선산에 부모님 유택 있고, 나도 언젠가 그곳을 따를 것이다. 들판 뜸부기 뜸~뜸~ 우는 소리 들린다.

(20210727.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