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3) 미늘 79. 의원면직하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
79. 의원면직하다
이영백
직장생활하면서 쉽게 내 뱉는 말로 곧잘 “사표(辭表)낸다”하고 산다. 사표는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적은 문서’니 결국 그 직업을 떠나겠다는 뜻이다. 교육대학 졸업하고 총각선생으로 바닷가에 발령받아 젊음으로 온통 대한민국의 교육을 혼자 다 떠맡은 듯 열심히 가르쳤다.
첫 학교 2년 10개월, 두 번째 2년, 세 번째 1년, 네 번째 2년, 다섯 번째 1개월 25일 만에 그 사표라는 것을 썼다. 그전에도 5년 복무기간을 마치고 첫날인 1978년 4월 30일자로 사표라는 것을 썼는데 제출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다섯 번째 학교에서 사표는 정식으로 제출하고 말았다.
네 번째 학교에서 대학교 편입시험을 치르고 대구 쪽에 가까운 곳으로 인사 이동하였다. 그곳에서도 6학년을 받고, 업무까지 받았다. 편입하여 모든 업무는 맡아도 좋다고 하니까, 교감이 업무전체를 나에게 맡긴 사무분장을 발표하였다. 상급자가 명령하니 안 할 수는 없었다.
4월 초에 전문대학 행정직 공개모집이 있어서 시험을 치렀다. 1차는 논문과 면접으로 통과하였다. 1차 합격자 134명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예비 합격하였다. 2차는 한자쓰기 150개 문항으로 치렀다. 4월 25일(토) 내자가 전보로 받은 최종합격통지서를 가지고 대구에서 학교로 찾아왔다.
교장실에 들렀다. 사표의향을 드리니 한 마디도 말리지 아니하고, 딴청을 요구하였다. “후임 선생님 발령이 빨리 나지 않으면 학급운영에 어려우니 오늘 사직원을 내 주지요? 그러면 5월 1일자로 후임교사 발령 납니다.”고 하며, 교육자로서 양심(良心)을 운운하였다. 그러면 학교의 모든 업무를 떠맡긴 것은 교장ㆍ교감인 교육자 양심이었든가요? 교육법전을 들여보니 사표 내는 양식이 있었다. “근무 중 과오를 범하지 아니하고 순연히 자기가 원해서 사표를 낸다.”는 것으로 된 양식이었다.
사표를 썼다. 드린 종이 한 장을 거룩하게(?) 받쳐 들고, 쪼르르 월성군교육청을 달려가 “의원면직”증명서를 갖다 주었다. 사표를 일찍 낸 덕택(?)으로 제자들이 교사 없이 한달 동안 자습하지 않고 떠나니 교육자로서 한 점 부끄럼이 없었다. 8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딱실 못에서 춤추었다.
초교 교사직을 “의원면직”하였다. 결과는 슬펐다. 고작이것이 전부인가?
(20210706.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