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77. 동아마라톤 타자기

청림수필작가 2021. 7. 3. 22:29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77. 동아마라톤 타자기

이영백

 

 교사생활 1년 만에 대구낭자를 만나 결혼하였다. 타자기를 잘 다룰 줄 안다고 하였다. 그것도 새로 나온 표준자판기의 자판을 익숙하게 친다고 하였다. 교사로서 해마다 자료출품을 하여야 하기에 타자기 구입이 필요하여 알아보았다. 배움책을 만들려고 하면 타자기로 쳐야 하였기 때문이다.

 대구처가에 왔다가 동아 마라톤타자기 구입을 하였다. 자그마치 나의 넉 달 치 봉급인 12만 원이었다. 해마다 상장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 타자기는 고가이기에 아직도 골방에 모셔져 있다.

 4학년은 구 교육과정이지만 자연 교과를 분석하여 실험ㆍ실습할 수 있는 초안을 만들고 마분지에다 타자기로 치니 훨씬 돋보였다. 시골에서는 타자기 구경조차도 못하고, 공문도 볼펜으로 써서 보고하던 시절이다.

 교육대학 다니고 있을 때 두 가지 일을 하였다. 하나는 권당 70원짜리 삼성문고 책 모으기였고, 다른 하나는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여러 학자들이 연구한 논문을 무료로 받는 일이다. 연구 자료는 시골까지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최신 교육방법이라든가 교육에 질 좋은 정보를 모두 제공받을 수 있었다. 수업이론인 “이원목적분류에 의한 행동목표”를 막 연구하여 나오던 때였다. 배움책(Work book)개발도 그 이론에 대한 현장형 개발의 시작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한국교육개발원이 뭐하는지 조차 모르던 시대였다. 4학년 자연과 배움책 개발로 학습 자료전에 출품하였다, 시ㆍ도 모두 “우수상”을 받았다. 한꺼번에 한 해에 상장 두 장을 거머쥐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겉으로는 동료교사들과 함께 술을 마셔대지만 집으로 들어오면 냉수 챙겨 마시고 밤새워 가면서 계속 연구하였다. 밤에 잠을 못자고 연구하면 어느새 새벽이 밝아 오고, 눈에는 핏발이 생기고, 머리는 아파왔다. 잠을 피하려고 하루 밤에 박카스 D를 박스채로 마셔댔다. 배도 고프고, 잠이 쏟아지니까 그렇게 겁도 없이 마셨다. 부인은 깜짝 놀라 카페인 중독성이 되므로 하루 두 병씩 점차 줄여갔다. 지금도 박카스 맛만 보면 즐겁다. 박카스 한 병이 밥 한 그릇 먹은 만치 효과가 있었다.

 대한민국 초등교육을 위하여 남보다 빠른 이론을 습득하고, 남보다 많은 상장을 쌓아가기 위하여 잠을 쫓고 연구에 거듭하였다.

(20210703.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