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75. 대기만성

청림수필작가 2021. 6. 29. 00:40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75. 대기만성

이영백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大器晩成〕”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를 진즉에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설마 무슨 큰 성공이 있겠는가? 호구지책으로 일이나 하면서 주어진 생명을 연장하고만 있다고 생각하였다. 세상에 태어났으니 밥값하면 된다고 그렇게 욕심 없이 살았다.

 초교 교사가 되었는데도 시대ㆍ환경이나 여러 가지 불합리하여 두고만 볼 수 없어 8년 근무하고 “의원면직”으로 그만 두었다. 2년간 교육하는 방법을 배우느라 고생하였는데 쉽게 버렸다. 교직의 호된 사회생활을 경험하였다. 낮은 급료에 현장의 어려운 운영으로 젊음을 묻기에는 억울하였다.

 빛난 능력을 어디에서라도 발휘하여 인정해 주는 곳이면 정열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랬다. 대학행정가로 업무개발에 정열을 바쳤다. 넓은 무대에서 많은 기여를 시작하였다. 사립대학의 규정정비로부터 전문대학의 범주를 넘기 위한 교명 변경(공업전문대->전문대학, 전문대학->이공대학, 대학->대학교 등)이나, 행정의 시스템적 자료개발(교원자격관리 업무), 행정발전을 위한 교직원 연수자료 개발 등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하였다. 교ㆍ직원 해외ㆍ국내연수를 정례하여 너른 안목을 키워나갔다.

 대학의 홍보활동을 현대화하였다. 홍보는 전체 구성원이 매일 이루어져야 하겠기에 전체 교직원의 개별명함에 동일 디자인에 무료로 만들어 배포하였다. 돈이 들지만 매일 500여 명이 명함으로 홍보하는 것은 TV 30초(나중에 20초) 광고비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대학 행정은 학생들에게 최대한 혜택을 주는 자동증명발급을 위한 준비를 완료하였다. 아날로그 학적데이터를 인터넷데이터베이스(19,078건)로 만든 것이 주효하였다. 단순한 내용은 전자화하여 업무효율을 배가 시켰다.

 대학이란 넓은 관문이요, 대한민국의 전문대학 영역을 지원하는 일에 골몰하였다. 업무개발과 동시에 표창장도 받으며 업무효율과 복지도 되었다.

 연수 때마다 좋은 호평을 얻었고, 상호 협조로 인하여 대학업무 발전에 기여하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기만성 형이 맞는가? 전국교직원연수회 때 제안하여 오직 사립전문대학 교직원에게만 표창장 하나 없던 것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표창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확실히 대기만성이다.

(20210629.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