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3) 미늘 60. 고2가 입주가정교사하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
60. 고2가 입주가정교사하다
이영백
어렵게 시골아이가 서당공부와 야학으로 시작하여 강의록 공부하고 2년 늦게 신학문을 하였다. 신학문의 경계를 마침내 무너뜨리고 드디어 공부의 낙을 붙여서 K고교에 합격하였다. 백태 모자 쓰고 모표와 배지 달고 고교 1학년 생활이 즐거웠다. 토요일이면 12Km거리를 친구들과 단어장 들고 외우기 경쟁을 벌이며 걸어 다녔다. 1968년 나에게는 그렇게 즐거움이었다.
고교 2학년이 되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로 공납금을 내었다. 중학교 교실에 찾아가서 주간 수학문제집, 월간 영어잡지, 고 3학년 교실에 가서 “진학”잡지를 신청 받아 매월 배부하였다. 3월초 동기생 형님의 서점에 사전을 한 트럭이나 대량주문 받아 많은 이윤 남겼다.
고2, 천하가 무서운 줄 모르고 공부하였다.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 새 담임은 영어선생님이었다. 막내아들이 우리와 같은 학교, 다른 반에 있었다. 2년 놀다(?)온 나를 불러 초등학교 입주 가정교사를 권하였다. 너무나 고마워서 그날 바로 찾아가서 확인하고, 이튿날부터 가정교사를 하였다.
시내에 편안한 집에서 힘든 아르바이트 안 해도 공납금(3개월 6,300원)을 마련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집이 한옥으로 경주 옛 국악원 터 안에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 선생이 되었다. 가르치는 것이 즐거웠다. 자고 일어나면 서천 징검다리를 건너 송화산 갔다 오곤 하였다.
11월 말부터 추워지기 시작하였다. 오후 시간에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 연탄을 피워서 방안이 안온하였다. 학생은 머리가 아프다고 오늘 공부는 안 한다고 하였다. 쉬라고 한 후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의 의식과 관계없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뒤로 벌러덩 누이었다. 그리고 천정의 형광등이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목에 걸칠 때는 꼭 죽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연탄가스를 먹었다.
입주 가정교사 자리가 좋아서 학생도 잘 가르치고, 성적도 올렸는데 연탄가스 먹고 나도 자신을 잃어갔다. 그 아이도 학교시험 치르고 나는 그 자리를 그만 두었다. 돈 버는 것도 지겨웠다. 지쳐버렸다.
신학문의 경계를 넘으니 파도처럼 밀려왔다. 곧 군대신체검사도 있을 것이고, 대학진학도 결정하여야 하였다. 나에게 해일처럼 몰려왔다.
(20210603.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