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3) 미늘 11. 삶의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
11. 삶의 앞에서
이영백
사람은 누구나 삶의 앞에서 서성거린다. 어렸을 때 죽도 못해 살아가야 하는 삶에서는 누구나 극한적 선택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력으로 할 수 없음에 그 힘이 아주 작음을 스스로 알고 탄할 뿐이다. 누구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그런 삶을 이끌고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이 지난 세월에서는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모두들 그렇게만 살아갈 뿐이다.
자식 셋을 낳고 남편을 여읜 여인이 살아가는 방도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다 못해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자식을 돌보아야만 하는 여인네로서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어린 자식 셋을 키워 내어야만 하는 모진 운명에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일 것이다. 한 마디로 과부의 삶은 억척으로 인고(忍苦)의 삶을 살아야만 할 뿐이다.
현재의 삶이 어렵더라도 시 ㆍ 공간을 뛰어 넘어야만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사람 삶이 저절로 살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록 작은 몸뚱이라도 몸부림을 쳐야만 삶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선을 넘어서야, 극기할 수 있어야 드디어 행복이 찾아 올 것이다.
사람 삶에서 모두가 지향하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큰 삶이다. 웅숭깊게 남을 배려하면 언젠가 스스로 그 배려했던 것이 되돌아 올 것이다. 물론 그 돌아옴이 숨 가쁘게 바로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두고두고 오랜 기다림의 아름다움에서 배려는 배려로 겨우 0.1%라도 돌아올 것이다.
삶 사는 것은 저절로 오지 않기에 머릿속 고민으로부터 앞으로 나아지는 삶을 생각해 내어야 일생 자기 삶에서 창의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얼른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더라도 그것이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삶의 노하우를 갖고 살아가고들 있다. 밤마다 뼈 저리는 고민으로 삶의 창의성을 발휘하면 두툼한 삶의 적금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일도 더러 있을 것이다.
가만히 나무 밑에 입 벌리고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는 언젠가 얼굴에 철퍼덕하고 낯짝에다 덮어 버질지도 모른다. 차라리 감나무 위로 올라가 홍시를 골라 따는 것이 가장 현명하게 따먹는 방법일 것이다. 홍시를 딸 수 있을 때까지 생각해 낸 것이 가장 창의적인 삶의 방법이다.
결코 일엽편주 같은 삶의 벼랑 끝에서 나의 삶을 스스로 토닥이자.
(20210309.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