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84. 일상 오후에

청림수필작가 2020. 12. 20. 00:29

40년 만에 시 오른 을뒷산 계룡산

84. 일상 오후에

이영백

 

 퇴직하고 퇴직 전직원을 만나면 곧잘 질문 듣는다. 뭐하고 사느냐고? 글 쓴다고 하니까 무슨 글을 그렇게 매일 쓰느냐고 되묻는다. 매일 글로 일상 삶을 그린다고 하였다. 그렇다. 글 쓸 일들이 밑도 끝도 없이 다가온다. 그냥 그렇게 나는 글을 쓴다. 컴퓨터자판기를 두드리고, 치고 있다.

 일상 잠에서 깨어나면 인간생활의 군무(群舞)가 시작된다. 꼼지락거린다. 사람은 움직이어야만 산다. 자잘한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 컴퓨터를 켜고 내가 애잔히 사용하는 조명등(照明燈)을 켜면 모니터 하얀 바닥에 한 행에 40글자를 모두 줄 세우기 시작한다. 그것이 글쓰기다. 나의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꼬물거리면서 나의 일상을 글로 그리고 있다.

 밤새 늦은 시간까지 글과 씨름을 했기에 오전 일상은 극히 짧다. 늦잠 아닌 늦잠에서 아점(아침과 점심)”을 해결하고 나면 어김없이 아침나절은 거개가 사라지고 만다. 오전나절 약속은 잘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저절로 나의 일상인 오후는 바쁘게 지나가면서 시작된다.

 일상 오후는 나에게 가장 좋은 작품구상으로 작품이 잉태되는 좋은 시간이 된다. 작품이라고 하면 나의 생각에서 생각을 보태어 디자인하는 것이다. 주제를 생각하고 소재를 풀어 놓고, 서두를 그린다. 아니 서두로 유혹한다. 본론에서 소소한 화제를 하나씩 옷 벗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반전을 준비한다. 한 편의 작은 글이라도 서두에 관형어를 자주 동원하여 도탑게 만들어 명품작품을 낳는다. 그것이 나의 삶에서 낙이 된다. 곧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수필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늘 적당한 시간을 배려하여 작품구성을 해댄다. 나 혼자 즐겁게 틔어야 하는 글을 쓴다. 글을 디자인한다. 스스로 나만의 뜻을 쏟아 부어서 커다란 명작(名作)이라는 산을 작품으로 모두 차곡차곡 쌓는다.

 나는 왜 작가가 되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가? 인문학, 남을 가르치는 직업을 얻기 위해 준비를 혹독하리만치 학습하였다. 고스란히 이러함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 얻은 지식에서 풀어내려는 마음의 의식이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밀어올림을 스스로 참지 못하기에 오로지 실행한다.

일 상 오후에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작가라는 미명으로 작업이 펼쳐진다.

(2020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