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81.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청림수필작가 2020. 12. 15. 14:43

 

40년 만에 시 오른 을뒷산 계룡산

81.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이영백

 

 나는 여태까지 여유(餘裕)라는 것을 모르고, 늘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여유가 있다고 하면 여유가 있었을 것이고, 없다고 하면 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여유는 여유를 주지 아니하였다. 흔히 여유는 시간의 얽매임이다.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자. 그것이 찾는 여유다.

 야시골공원에 오르면 나만이 갖는 참 고마운 시간을 확보한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머릿속을 텅 비워 둘 시간이다. 그러면 앞으로 진행해야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마음의 여유를 그렇게 시간으로 얻어 보는 찰나였다. 새로운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3년을 끝까지 못 채우고 명퇴를 하면서 포부도 크게 잡아 글을 쓰겠다고 나만의 창작 방을 확보하였다. 늘 다달이 세를 받던 곳을 내가 자리 잡았다. 그곳에 집기를 장만해 넣었다. 동인동 굴다리 곁에 중고 가구점에 들렀다. 책상은 넓은 것이고, 의자는 회전용이고 글 쓰다 뒤로 젖히면 편안할 암체어(female chair)를 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청림창작실은 참 편리하여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준비가 다 되었다고 사무실 전화벨이 울리고 그렇게 밥 먹었다. 행복하게 나만의 공간에서 창작에 몰두할 수 있게 허락해 준 내자가 참 고마웠다. 특히 좋았던 것은 나만이 즐겨 마시던 커피를 끓일 커피포터와 소모품 커피를 두둑이 사다 쌓아두었다. 간혹 동료퇴직자 중에 찾아오는 분은 서너 잔 커피를 마셔야 귀가하곤 하였다. 그것이 시간 흘러 세를 내 주고 다시 이층으로 올라오고 말았다. 그래도 방을 확보하여 혼자 글을 쓴다. 그러나 창작실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야시골공원 나무 등걸에 걸터앉으니 나만이 사유(思惟)의 세상을 얻는다. 나무는 그렇게 내가 찾아가 나무 등걸에 걸터앉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편안한 자리는 글 쓰는 곳뿐만 아니고 도심 공원 속에 자연의 나무 등걸에 걸터앉은 것으로 이것이 여유(餘裕), 여유(旅遊)가 되었다.

 편안한 자리 나무의 나이테가 한결 나의 마음을 알아주어서 나무 등걸에 걸터앉는 것이 더욱 편해졌다. 나 이제 이곳 나무 등걸을 자주 찾으리라.

 나만의 시간을 갖는 여유로움은 나만의 영혼을 끌어다 글 쓸 자유다.

(2020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