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42. 바늘귀 꿰일 인연

청림수필작가 2020. 10. 8. 10:27

“4다마 계룡산

42. 바늘귀 꿰일 인연

이영백

 

 그 나이에 바늘귀 꿰기를 그렇게 잘 합니까? , 전 근시라서 아직까지도 바늘귀 잘 뀁니다. 세상의 반짇고리 속 바늘쌈지에서 바늘들이 서로 저를 선택해 달라고 흰 몸을 휘저으며 야단법석이다.

 “어떤 사람이 평지에 바늘을 꽂아놓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 실오라기 하나를 던진다. 이 때 실오라기가 그 바늘귀에 꿰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바른 진리를 만나는 것은 바람에 날린 실오라기가 바늘귀에 꿰이는 정도로 회유하고 귀하고 소중한 인연이다라고 불교 성전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1949년 음력 사월 열이틀에 마흔넷 엄마의 배를 빌어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렸다. 그것도 엄마는 마마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다섯째 세 살 누나 호열자에 걸려 죽은 마당에 나까지 태어났다. 위로 형 넷을 두고 누나 다섯 두었는데 무어 그리 열을 꼭 채우려고 낳으셨던가?

 아버지 근세조선말 고종(高宗) 광무3(1899)생이라 전근대 분이었다. “무릇 남자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여야 하며, 집안 일으킬 학문은 서당에서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초교 입학 전 서당에 다녔다. 시대가 시대인 만치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안 보내면 의무교육법에 걸리므로 난 겨우 졸업하였다. 중학교 입학은 상상도 못하였다. 어련히 초교졸업 이튿날부터 다시 서당에 다녔다. 동몽선습, 계몽편, 소학, 명심보감, 통감 등 2년 동안에 모두 뗐다.

 난 분명 2년 동안 고민을 많이 하였다. 강의록으로 독학하면서 신학문이 너무 즐거웠다. 마침내 집을 박차고 나가 돈 벌어가면서 공부하였다. 내친김에 고교까지 마쳤다. 남자의 시계로는 군대영장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교육대학에 입학하였다. 또 돈 벌어가면서 공부하였다. 순전히 산 위 바늘귀에 실오라기 하나 꿰일 확률에 걸려 내 인생이 만들어졌다. 교사 발령받고 1년 벌어 내자를 맞이하려고 하였는데 아버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엄마의 필혼성취를 위해 나도 어쩔 수 없이 결혼하였다.

 누구는 꼬박꼬박 부모한테 돈 받아가면서도 잘 못하던데 나는 바늘귀에 실오라기 하나 꿰일 확률의 인연으로 내 인생을 만났을까?

(20201008. 寒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