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림수필작가 2020. 5. 27. 14:38

56. 핍월(乏月)

이영백

 

 “엄마내가 태어난 달이 언제인가요?”

그래핍월(乏月)*이란다.”

엄마핍월이 무슨 달이에요?”

그래 그건 모르지만, 서당 훈장님은 잘 아시던데.”

 1949년으로 625전쟁 발발 한 해 전이었다그해 핍월은 날도 가물고 하늘 바라기하는 천수답봉천답 농사짓기가 정말 어려웠다날이 가물고논바닥은 갈라지고 비가 내리지 않으니 농사를 못 지어 먹을 것이 없다.

얘야네가 태어난 음력 사월은 보릿고개가 한창이었고네가 뱃속에서조차 못 먹여서 야를 어쩌나 걱정이 태산 같았단다네 막내 누나가 끝내 세 살에 죽어서 한이 맺혔는데 그때 네가 태어날 준비를 하였지또 사월 열이틀에 천연두 마마를 앓아 내 생사가 왔다 갔다 하였단다. 그래그해 음력 사월은 해 길고배고프던 시절이었단다막내 다섯째 딸이 죽어 눈물마저 말라버렸는데나는 천연두 마마(媽媽)까지 걸려 힘겨웠는데 너를 낳았단다아마도 막내 딸 따라 나도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네가 안 죽고 모진 생명으로 엄마목숨까지 이었단다. 그래 너는 바락바락 살아남았단다이 모진 세상에 다섯 번째 아들이었고딸까지 합쳐서 열 번째 막내가 된 것이 너란다그래서 핍월음력 사월 보릿고개에 태어났단다.

이듬해 양력으로 동장에게 부탁한 날이 바로 네 양력생일이 되었단다그래아가야 날이 가물어 굶어가면서도 낳은 게 너란다음력 사월 해 길고배고플 때 태어난 핍월의 자식이란다정말 너무나 미안하구나.

지나온 세월이지만 누구에게도 부끄러워 차마 이런 말을 못 하였다목구멍에 넘긴 것은 우물물인 찬물뿐이었단다여러 세월 겪어 왔지만 그렇게 모질고힘들게 핍월에 태어난 게 너란다나조차 못 먹어서 부족한 젖으로 연약하고 잔병치레를 많이도 하게 만들었구나모두가 이 어미의 죄란다기어이 엄마는 끝까지 더 말을 못 잇고 입을 닫고 말았다.

아버지는 많은 자식 낳고굶기지 않으려고 동분서주하였다내년에 오할 이자라도 주고 부잣집에 찾아가서 장리를 얻어 왔단다하나같이 귀한 자식인데 누군들 안 귀하랴잔병치레 하였으니 커 가면서 면역력 생길 것이고 배 굶지 않고 돈 많이 벌어 잘살아라부디부디 잘 살아라.

나의 어머니 평생 그렇게 나를 핍월에 낳았다고 한탄스러워 하였다.

(20200527)

*핍월(乏月) : 음력 4월 보릿고개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