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48. 엄마와 코딱지나물 전

청림수필작가 2020. 5. 20. 17:21

48. 엄마와 코딱지나물 전


이영백


 우리 집은 들판 속에 살았다. 논으로 이어져 있는 들판 속에 용하게도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와 의논을 하였는지 밭 사천여 평씩 나누어 소유하였다. 가운데 밭둑에는 우리 집 뽕나무를 심어 밭의 경계선이 되었다.
 봄이 왔다. 아무런 감각도 없이 겨우내 움츠려 있다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이 왔다. 도랑물이 가장 먼저 돌돌~ 봄을 알려왔다. 도랑둑에 노랗게 빛나는 우리 들꽃은 언제 들어도 이름이 너무 예쁘다. 패랭이, 바람꽃, 봄 까치꽃, 지치, 노루귀, 괭이눈, 별꽃, 붓꽃, 꽃다지 등 수두룩하게 봄을 찾아 왔다. 작은 아이들도 찾아 온 봄에 어울려 논다.
 고향에서는 꽃다지를 “코딱지나물”이라고 불렀다. 원래 꽃다지는 우리말 “~아지”에서 보여주듯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등으로 본래 것보다 작은 것에 붙여진 이름이다. 코딱지나물이라 불리는 꽃다지도 다 자라봐야 20cm 전후밖에 안 되니 그렇게 이름을 붙였지 싶다.
 꽃다지에서 다지는 오이나 가지 등의 맨 처음 열린 열매를 말하기도 한다. 또한 이름에서 보면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어나게 한다는 속뜻도 있다. 추운 겨울을 지속적으로 참아 오다가 연한 연두색으로 줄기를 버겁게 키워서 겨우 줄기가 형성되었다. 봄이라하여 저도 모르게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만 것이다. 자연의 드넓은 들판에 마음껏 자라서 우리들에게도 힘이 되려는 듯 생명의 놀라운 힘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엄마의 극성이라 할 정도로 봄을 가장 먼저 느끼려고 꽃다지 “코딱지나물”을 윗부분인 순을 잘라 와서 지글지글 전을 부친다. 기름 냄새 그윽하게 마당에 퍼지면 우리들은 저절로 코를 벌렁대며 배고픔을 달래려고 찾아든다. 접시마다 코딱지나물 전을 부쳐 사랑채, 큰 채, 그늘진 마당 귀퉁이에도 멍석 깔고 전을 먹는다.
 오늘도 엄마의 부지런함에 코딱지나물 순으로 전을 부친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가장 빠른 봄의 전령사인 코딱지나물 전으로 만났다.
 배추흰나비가 봄을 알리려고 날개를 팔랑거린다. 마당에 삽살이도 꼬리만 흔들다가 엄마가 전 부치는 것에 자기도 거들어 보려고 멍석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황소는 봄의 기운을 느꼈는지 힘찬 소리로 한 번 울어 준다.
 그래서 봄은 꽃다지인 코딱지나물 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꽃다지 순에서 훌륭한 먹거리로 가장 먼저 전을 부쳐서 우리 가족들 봄 사랑을 퍼뜨렸다.
(20200519.발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