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림수필작가 2020. 5. 15. 16:36

44. 길

이영백




길은 첫째로 교통수단으로서의 길이요, 둘째는 방도를 나타내는 길이며, 셋째는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이다. 길의 뜻도 여러 가지며 길의 갈래도 여럿 있으니 어느 길로 가야 올바른 선택이라 할 것인가?
 이러한 길을 나의 엄마는 차성이공 39세 수상(壽祥)의 청년을 만나 어렵사리 평생을 의지하며 살았다. 넓지 않은 불국사 동향에서 결혼하고 아들 다섯, 딸 다섯 낳고 오순도순 사는 아주 평범한 여성의 길을 택하였다.
 길을 정의하면 “사람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오갈 수 있게 된, 거의 일정한 너비로 땅 위에 뻗은 공간적 선형(線形)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상 우리나라 처음의 길은 융천사(融天師)가 지은 「혜성가」와 득오(得烏)가 지은 「모죽지랑가」에 각각 ‘도시(道尸)’라는 단어가 똑같이 나오는데 향가 연구가들은 예외 없이 이것을 ‘길’이라 해독한다. 향가에는 이 밖에도 길을 뜻하는 말로 ‘노(路)’ 또는 ‘도(道)’도 보이고 있어 그것들은 길로, 또는 한자음 그대로 읽을 해독이 가능하겠다. 그러나 ‘道尸’의 경우는 ㄹ받침으로 관용된 ‘尸’를 명기함으로써 ‘道尸’의 ‘道’가 ‘도’라 읽지 않고 ‘길’이라 읽는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길’이라는 말은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순수한 우리말로 써내려 왔을 것으로 추측해도 좋을 것이다. 그게 바른 길의 우리의 해석이다.
 길은 처음에는 굽은 길이었다. 마치 사람이 일생 뱅뱅 돌려 꼬인 인생을 산 것과 같은 굽은 길이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둘러 다니던 길을 똑바로 고쳐 바로 갈 수 있도록 하였듯 사람들 가는 길도 바르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고 굽은 길과 바른 길이 섞이어서 굴곡 많았던 인생살이와도 같이 굽은 삶, 바른 삶을 마치 시멘트 비비듯 섞인 인생으로 살았을 것이다. 대다수 이런 인생살이를 한 것이 너무 많을 것이다.
 누가 인생을 처음부터 바르게만 살 수 있었겠는가? 어떤 인생을 한 번 살펴보아도 구불구불한 인생이 있는가하면 하는 일마다 척척 실타래 풀리듯 하는 삶도 있지 않겠는가? 작은 인생이지만 살아 본 나로서도 꼬이고 풀리고 또 꼬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길이 열린 지금은 마냥 행복할 뿐이다.
 행복한 길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엄마도 평생 다복하였다하면 다복하였을 것이다. 많은 자식 낳은 사연을 추려내어 엮으면 한 권의 너끈한 소설이 될 것이다. 엄마의 삶이 결코 평탄치 않았을 것이고, 꼬깃꼬깃 모아둔 이야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20200515.스승의 날 ㆍ 가정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