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10. 밀개산을 오르며
10. 밀개산에 오르며
이영백
하릴 없이 륙색(Rucksack)을 찾았다. 또 집게, 장갑, 비닐봉투와 등산모도 함께 챙긴다. 알밤 떨어지기 좋은 바람 부는 가을날 느닷없이 부모님산소를 찾느라 아무도 몰래 나 혼자 길을 나섰다. 동대구 S백화점 4층에서 경주로 간다. 시외버스에 오른 순간 금세 경주에 닿고 600번 모화 가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울산으로 가는 국도변 시래교(橋)에서 하차하였다.
동해남부선 철교 밑을 통과하면 부모님 유택이 산록에서 기다리고 있다. 채 50m도 못가 구릉 밀개산에 취송당(翠松堂)*이다. 그 곳으로 동네사람들이 등산을 다닌다. 유산소 운동이 절로 되어 돈 안 들이고 운동하고 산다.
겨우 산기슭이 시작되자말자 송명거사(松明居士)* 비가 나를 기다린다. 송명은 우리말로 “횃불”이다. 아버지 성질이 급하시고 울력이 돼 꾸물대다가는 누구든 혼이 난다. 씹은 소주 한 잔 붓고 절 드린다. 저만치 위쪽에 조부 ㆍ 조모 만호학행(曼瑚學行)*비가 보이고, 증조 ㆍ 증조모 취송유허비*가 기다린다. 차례로 찾아뵙고 산중유택에 불편함이 없으신지 우문현답을 받는다. 사람 천 년, 만 년 살 것으로 믿지만 자연수 다하면 북망산 간다.
가을은 만물이 열매 맺는 계절이다. 그 중에서도 산중 밤나무는 굵은 열매를 선사한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우수수 투~닥~탁~ 알밤이 내 머리 위를 스치며 놀라게 떨어진다. 집게로 밤알을 한 알씩 집어 비닐봉투에 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 작은 가방이 내 인생의 무게만큼 가득 찼다. 주울 알밤은 내가 먹기만큼만 되면 그만 줍는 것이 자연의 순리고 이치다.
밀개산은 높은 산이 아니고 구릉이다. 구릉지는 150~600m로 평지 또는 대지에 비해 고도가 높고, 산지에 비해서는 낮은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좋은 안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묘원으로 안성맞춤이다. 고향에다 이러한 유택이라도 마련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다.
이 불국동을 가운데 두고 장기판을 벌인다. 구경꾼 “구정동방형분묘”가 있다. 석가탑의 다른 이름인 무영탑이 “영지(影池)”에서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을 소환한다. 그 뜻을 받아 구정광장에 “영원”기념물이 설치되어 나를 본다.
밀개산은 산도 아닌 구릉지이지만 나의 북망산이기에 보러 오른 것이다.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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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송당 : 차성이문(車城李門) 취송(諱慶淵)공 37世 이하 가족묘원. *송명(諱壽祥)거사 : 39世, *만호(諱膺祚)학행 : 38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