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20100의 습작 시

[스크랩] 청림/20100산문시-ㅅ)1159.성동成童

청림수필작가 2016. 3. 25. 10:07

청림산문

1159. 성동成童

이영백

cafe.daum.net/purnsup


나도 한때는 소년이었다,

남아男兒로 태어났으니 소년이었지.

아버지는 아들 넷까지 낳아 두고도 무엇이 부족하여

쉰한 살에 나를 낳아 주셨는지.


한때 열다섯 살 된 소년 성동成童*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증조 대부터 알고 있었다.

자손을 많이 낳아야만 대를 이을

자손이 번성하여야한다는 것을 징표로 받아왔는지 모른다.

고조는 자손이 없어 무후無後였다.

증조는 양자로 와서 대를 이었다.


한때 열다섯에 초교 졸업하고 신학문을 못했다.

서당에 다니면서 소위 한문책을 배우러 다녔다.

아버지 철학은 신학문하면 사람 버린다고 하였다.

권모술수만 배우고, 가문을 돌보지 않는다고 여겼다.


아버지는 1899년 기해생己亥生으로 전근대에 살았던 분이었다.

아버지는 일찍 경부선 상하행선 청도 남성현 굴을 뚫으러

보국대란 이름으로 일을 하였다.

남성현 십리굴을 곡괭이 하나로 뚫은 이야길 곧잘 해 주었다.

동해남부선 시래 철교鐵橋를 놓기 위해 동민이 모여서 부역도 하였다.


남아성동이면 세상을 구할 한문을 공부 하여라 하였다.

나는 열다섯 성동이었어도 동기들은 신학문 배우러 갔고,

나는 고의적삼에 홑바지 입고 서당 다니면서 산에 나무하고,

소꼴(=풀) 베러 다녔지.

(청림/20100. 20160325.)

*성동成童 : 열다섯 살 된 소년.

----------------

(퍼 온 사진)

*불국사초교 11회 졸업-6학년 3반(1963.2.9.)

*천자문

*계몽편


*明心寶鑑

----------------

李 泳 伯 (1950∼) 경주産. 대구거주. 호 靑林. 필명 청림/20100.

●교육자 ●교육행정가 ●보학가 ●수필가

-------------------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교육학석사

○차성이씨중앙대종회 사무총장

현) e이야기와 도시 대표

현) 영남이공대학교 50년사 편찬위원

●2012년 월간 한비문학 신인문학상 수필부문수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한비문학회 회원

○수필과지성 창작아카데미 수료

●매일신문사 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부문 우수상 수상(2015년 7월)


출처 : 청림/20100/수필가 이영백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