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42.와룡산 참외
신작수필 |
42. 와룡산 참외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RNTC 2년차 입영훈련을 하면서 군사훈련이 이제는 재미나 했다. 그만큼 여유와 괴롭힘이 없으니 좋았다는 말이다. 오늘은 주간에 독도법讀圖法과목을 이수하였다. 그것도 주간독도법을 마치고, 야간에 또 독도법시간이 있었다.
학군단 연병장에서 독도법 이론과 실습을 통하여 무수히 실습을 하였다. 물론 독도법을 아주 어려워하는 후보생이 많았다. 독도법도 어디까지나 학문이고, 이를 잘 연구하면 쉬워지기도 한다. 나는 학군단에서 독도법 시험도 1차에 통과하였다. 당시 우리 학군단에서 독도법 C교관은 혹독하였다. 학군단 후보생 1년차 160명 중 20%인 32명만 통과 시킨다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재시험이 있었는데, 재시험 전에 사전공부도 하여야 했다. 그래도 통과 못하면 3시, 4시까지 했으니 모두가 독도법이 어렵다는 것을 학군단 시절에 뼈저리게 공부한 것이다. 독도법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하였나 하면 이유가 있었다. 산 속에 들어가서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방향을 터득하고 그것도 현재 위치에서 아는 방법과 지형지물로 현 위치를 아는 방법을 알아야 그곳을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흔히 독도법에서 말하는 전방교회법과 후방교회법인 것이었다.
이것을 오늘은 주간독도법으로 이론과 실습을 하였고, 부대로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 달도 휘영청 밝은 한여름 밤에 야간 독도법을 실시하러 나서는 것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야간훈련을 위하여 정문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당시 50사단 후문으로 나가면 와룡산 야외교장으로 바로 나갈 수 있었다. 물론 후문에도 위병이 있어서 우리들이 교육 나가는 것을 체크하고 있었다. 즉, 나갈 때 소속, 인원과 들어 올 때 소속 인원이 같아야 한다. 정말 그랬다. 정문으로 빙 둘러 와야 하는데 저녁 먹고, 야간 훈련을 위해 후문으로 빠져나오니 바로 와룡산 야산에 야생 대추나무가 숭숭 자라고 있는 구릉丘陵이었다.
일단 10명씩 분대를 편성하여 지도와 나침반, 플래시 등을 기본 장비로 배부 받고 흩어져서 목표물을 찾는 훈련이었다. 주의사항이 있었다. 목표물을 9시 반까지는 찾고 완성하면 교관에게 확인을 받고 쉬면된다고 하였다. 9시 50분에 부대로 복귀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목표물을 늦어도 9시 반까지 찾지 못해도 처음 장소인 50사단 후문 앞까지는 모여야 한다고 명령하였다.
우리 분대 목표물은 3군데를 배정 받았다. 일단 와룡산 비스듬히 능선을 따라 목표물이 배치되어 있었고, 이를 확인하고 내가 아는 이론대로 목표물을 찾아 내용을 기록하고, 그곳의 비밀번호를 기재하여 두고 나니 시간이 선산장천같이 남아돌았다.
마침 우리 분대에 부산교대생 5명이 있었고, 우리 대구교대 학군단도 5명이었다. 우리 임무를 일찍 완수하였으니 그 보상으로 쉬게 되었다. 철모를 벗고, 소총을 모아 세우고, 웃옷을 벗고, 군화를 벗고, 어떤 후보생은 심지어 바지까지 벗어서 그 무덥고 칙칙하고 습한 대구 한여름 밤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아니 훈련이 아니라 훈련에서 완전히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것 우리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도 무덥고, 더우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모두 벗고 자유를 즐기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부산교대 후보생 중 한 명이 제안을 하였다. 자기가 아까 목표점을 찾을 때 골짜기 건너 아래쪽에 원두막 있는 것을 발견하고 왔다고 한다. 덥고 힘들기에 참외를 사 오겠다고 하였다. 모두가 무덥고 목이 마른 때였는데 그 심부름을 자기가 자청하겠다니 우리들은 귀가 솔깃하여 조교에게 잡히면 안 된다고 누누이 일러 주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팬티만 입고 군화 신고, 파이버만 쓰고 돈 가지고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우리들 나머지 9명 분대원은 지켜보고 그저 고마워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기막힌 일이 일어 날 것은 아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한여름 밤은 깊어 가는데, 와룡산의 주변으로 희뿌연 달빛만이 철모 쓰고 팬티 입은 희한한 청년의 거동을 내려다보면서 ‘가면 안 된다!’라고 중얼거리듯 한다. 이미 엎질러진 우유라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내려간 부산교대 후보생은 오로지 시원한 참외나 수박을 먹을 것을 기대하고 가시덤불, 아카시아 침도 마다하지 아니하고 골짜기로 내리 쏟아져 내려갔다. 이제 도랑만 건너면 원두막이었다.
“참외 팔아요?”
“예!”
“이리오세요.”
원두막에서 폴짝 뛰어 내린 우리 구대 조교助敎가 참외 사러 간 그 후보생을 그만 답삭 붙잡고 말았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참외는커녕, 우리분대는 단체기합만 받았다. 원산폭격으로 고된 기합을 받느라고 우리는 진땀만 빼고 말았다. 사람으로 본래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기어이 부산교대 후보생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기합은 당연한 것이고 “반성문”을 제출하라고 해서 그래도 겨우 기합에서 해제 되었다.
이후 와룡산 참외 맛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아! 와룡산 참외 지금은 그 맛이 어찌 달라졌을까?
(푸른 숲/20100-2013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