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32.밤의 행군行軍

청림수필작가 2013. 6. 27. 09:30

신작수필

32. 밤의 행군行軍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RNTC훈병들은 매일 계획된 훈련은 반드시 이수하여야 한다. AR소총 재원과 사격훈련 과목이었다. 본래 AR소총수는 분대에 7번이었다. 그러나 행군 시에는 AR소총에 삼각대가 달려 있고, 개머리판이 넓고 길어서 오른쪽에 매고 가면 무릎 위를 들이 받는다. 행군을 오래하고 나면 오른 쪽 다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곤 하였다.

 AR소총의 영점조준 사격에 나섰다. AR소총을 나는 매우 좋아 하였다. AR소총은 삼각다리를 받쳐 두고 사격을 하기 때문에 적확히 명중하는 확률이 높았다. 삼각대로 인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로지 표적에 정신을 쏟을 수 있어서 좋다. 낮에 AR소총사격, 밤에 야간사격을 마치고, 막사가 있는 내무반까지 행군해 가려면 무척 걱정이었다. 야간사격을 마치고 정리하고 나서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1시이었다.

 주·야간 사격에서 걸어가는 이 시간! 증평 비포장길 신작로新作路로 그냥 군화소리 내면서 걸어간다. 간혹 밤 쥐가 이쪽 논에서 길을 건너 저쪽 논으로 이동해 가는 소리, 호작∼호작 저어가는 물소리가 커서 도시에서만 살았던 친구는 놀라 소스라친다. 착∼착∼! 군화소리만 장단을 맞춰 앞의 사람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떼고 또 뗄 뿐이다.

 낮이라면 군가軍歌라도 부르련만 벌써 새벽 1시가 넘은 이 한밤에는 그저 조용히 발걸음 수만 헤아리게 된다. 자꾸 앞의 사람 발걸음만 따라 잡는다. 그러다가 한 훈병이 졸아서 그만 도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앗! 소리와 함께‘부대 제자리 서!’구령이 발하고 떨어진 그 훈병을 살폈다. 그러나 용케도 다치지 아니하고 그저 손바닥에 멍만 들고 말았다.

 명령이 떨어졌다. 전체 졸지마라. 오른 손은 총을 겯고, 왼손으로는 앞의 훈병 옷을 잡아라! 졸지 말고, 발걸음을 정확하게 벌려서 행군하라.

 이것은 이론상으로 ‘바다 위를 건널 수 있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 발이 바닷물에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올려 걸으면 바다 위를 건널 수 있다고 하는 해괴한 괴변철학이 있을 수 있다.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다. 우리가 낮밤을 연속적으로 훈련 받고, 내무반까지 걸어가야 하는 운명에 놓인 게 그저 슬플 뿐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 모두가 대한민국에 남자로 태어 난 죄밖에 없을 것이다. 졸아도, 넘어져도 다쳐도 이 모두가 남자로 태어난 대가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제 겨우 대부대가 꼬물꼬물 옮겨 온 발자국이 겨우 몇m이든가? 아니 포병은 3보 가려면 승차인데, 어찌 우리는 100보병 주특기로 걷기만 하여야 하나?

 들리는 뉴스에 행군 길에 오른 훈련병은 얼마 되지 않아 숨을 헐떡이며 발걸음을 제대로 떼지 못했고, 결국 행군을 마치지 못한 채 부대에 조기 복귀했다고 한다. 그 훈련병이 부대 막사에서 쓰러진 시간은 오전 4시 10분으로 체온이 40도까지 오르자 부대 원사가 군의관에게 상태를 보고했고, 지시대로 수액을 투여했지만 열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훈련병은 이후 대대 의무대에서 사단 의무대, 육군 병원인 경기 ××병원, 의정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그날 오후 4시 30분에 숨졌다고 한다. 사인은 “횡문근융해증”및 “급성신부전증” 이라고 한다. 의료진은 극심한 운동으로 파괴된 근육조직이 혈관과 요도를 막아 신부전증으로 발전, 사망했다는 소견을 내놨다고 한다. 이런 소식이 전해 온다. 그저 끔찍할 뿐이다.

 지난해에도 육군훈련소에서 한 훈련병이 고열로 부대 의무실을 찾았다가 당직 군의관이 퇴근한 상태에서 의무병이 해열제만 처방한 뒤 뇌수막염에 의한 패혈증과 급성호흡곤란 증세로 숨져 파장이 일었다.

 또 같은 해에 이 부대 소속의 훈련병이 중이염을 호소했으나 훈련소 측이 외부진료를 허가하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군 인권센터 임××소장은 “규정에 따르면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환자를 적합한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아 훈련병이 병원을 옮겨 다니다 치료시기를 놓쳐 사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 관계자는 “정말 안타깝다.”며 “병사들의 건강관리를 더 철저히 해 이 같은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 하겠다.”고 밝혔다. 육군은 그 훈련병을 일병으로 1계급 특진하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했다. 이 사고로 해당 부대의 중대장은 경고, 소대장·행정보급관·분대장은 견책의 징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니 이럴 수가 모두가 아까운 청춘을 두고 행군에서 견디지 못해서 사라진 병사들이다.

 우리도 훈련 중에 무리하면 이런 뉴스거리가 안 될 수 없을 것이다. 주야로 사격하고 한 밤에 행군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군대에서 밤에 행군하는 것은 일상생활이요, 극히 이례적이지만 우리는 매우 피곤하였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이다. 그저 군화 소리에 맞춰 앞사람과의 간격을 유지하고 오로지 살기위해 걷는다. 걸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RNTC훈병들의 임무이다. 󰃁

(푸른 숲/20100-20130627.)  

출처 : 푸른 숲/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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