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10.RNTC훈병과 식사
신작수필 |
10. RNTC 훈병과 식사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RNTC훈병이 되고서 군사훈련이 무르익고 있었다. “입영훈련Ⅰ”과목으로 군부대에 위탁 훈련이 되다 보니 대학 학군단에서는 위험한 총기나 수총류탄 실습을 거의 하지 못하다가 군부대 시설에서는 거개가 매일 실습이었다.
그날은 용케도 영점조준 실시를 한 후 M1 소총사격을 하고 있었다. 9시부터 훈련이 시작되었다. M1 소총을 준비하고, 감적호 팀도 있어야 하며, 사격을 하는 팀도 있어야 한다. 준비하는 팀은 그냥 두지 아니하고 선착순을 시킨다거나, 사격자세를 연습하기도 하였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하여 훈련이 준비된 교관과 조교들은 교육대상자인 RNTC훈병들을 그냥 두지 아니하였다. 한 마디로 매우 괴롭혔다. 시간이 지나야 마치는 교육이 아니던가?
사실 RNTC훈병은 준 군인이면서, 군사훈련 실습을 수료하여야 하는 대상자일 뿐이다. 훈련을 시켜 당장 부대에 내놓고 이용하려는 대상도 아니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병역의무를 완수하였다는 대상자들로서 이수가 목적일 뿐이다.
오전 내내 반복하여 같은 훈련을 점차적으로 이행해 가는 굼벵이들이었다. 훈련을 아주 진척 있게 실시하여 성과를 올리려는 것도 아니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희한한 부대요, 군대교육 훈련단체이었다.
지루한 군대 훈련도 시간이 자꾸 흘러 어느 순간에 12시가 되고,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야외훈련은 행정본부에서 트럭을 이용하여 밥을 공수하는 것이었다. 트럭에 1년차 350여 명이 먹을거리를 싣고 도착하였다. 트럭이 시간을 맞추어 점심을 배달하여 주는 것이다.
아침부터 감적호에 들어가서 준비하고, 확인하다가 나와서 사격자세를 연습하였으니 처음에 A급 군복이 C급으로 변하고 이제는 흙투성이로 변하고 말았다. 흙을 툭툭 털고 모두가 열을 맞추어서 배식 판을 들고 음식을 받았다. 숟가락은 항상 웃옷 오른 쪽 주머니에 고무줄에 매달려서 우리 입에 활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제부터는 정신이 들어 음식 받은 배식 판을 들고 줄을 맞추어 앉아서 먹기 시작하였다. 날은 여름이라 하늘에 맑고, 흰 뭉게구름이 떠 있고, 멀리서 플라타너스에서는 시원하고 애잔한 매미소리가 들리고, 점심시간에 맞춰서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해 주고 있었다. 간혹 여름 시원한 바람이 우리들의 목덜미를 부채질하여 주었다. 가끔 길 지나는 증평 아가씨들이 지날라치면, 그래도 남자들만 모였다고 치마 입은 여자를 보면 저절로 휘파람이 누구에선가 불리어지고 있었다.
“151번!”
배식 장소에서 저만치 내 번호를 찾고 있었다.
“예, 여기 있습니다.”
대답을 듣고 손을 흔들어 오라고 한다. 배식 판을 놓아두고 뛰었다. 행정반장 정병장님이었다. 반가웠다. 아니 낮에는 처음 보았다. 얼굴이 동글납작하면서 키는 나처럼 작았다. 작대기 네 개인 병장님이었다. 여기 기간병에서는 고참 이었고 최고이었다.
“오늘, 네가 여기 훈련하는 줄 알았다. 이리 와!”
냄비를 하나를 불쑥 내밀며 주었다. 들고 가서 먹으라고 하였다. 그 냄비 속이 무척 궁금하였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주는 대로 들고 배식자리로 빨리 돌아와서 뚜껑을 열었다.
우리 행정반장 정병장님 이렇게 자상도 하였다. 군대 밥 맛 없을 것으로 보아서 고추장과 여름 푸성귀로 담군 사제 김치까지를 얻어다 주었다.
내 자리에 앉아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도록 고마웠다. 곁의 RNTC훈병들과 고추장과 풋김치를 나누어 먹으면서 감개무량하였다. 군에서 밥 먹는 입맛이 절로 낫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팠는데, 행군해서 학과 출장해 오면서부터 뱃속은 쪼그락 소리가 났는데, 이런 하얀 쌀밥에 사제 풋김치와 고추장은 사회의 어느 최고 식당에서 사 먹는 그런 요리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정말 너무나 맛이 좋았다. 곁의 친구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주니까 모두가 사제 김치에 “야호!”라고 외쳐 댔다.
정말 그 때 그 풋김치는 잊어버리지 못하는 최고의 맛이었다. 정말 고향 형님을 만나서 아니, 정반장님 처가 곁의 동네 사람으로 이렇게 호강을 받아도 되는가. 고맙습니다. 행정 반장님! 정병장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야외 학과출장 장소까지 일부러 따라 나와서 나에게 내민 그 냄비 속의 비밀을 이제야 공개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푸른 숲/20100-201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