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09.고향 까마귀
신작수필 |
09. 고향 까마귀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고향이 무엇이드냐? 고향 있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고향이 있어도 척간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타향에 살면서 여북하면 고향의 까마귀만 보아도 행복하다고 했겠는가? 고향사람들 만나서 고향을 이야기하면 밤이라도 새울 듯이 하고 만다.
특히 군대에서 고향 분을 만난다는 것이 오늘날 로또 되는 확률보다 더한 것이다. 그것도 우리 학생대를 총괄 지원하는 행정반장이라니 말이다. 이런 우연의 인연을 만들려도 만들 수가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천우신조다. 우연찮게 고향의 선배를 만나는 행운을 내가 받은 것이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는 장군도 장교도 필요 없이 실무를 맡고 있는 기간병(정병장)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 중에 행운이었다.
RNTC입영훈련 3주간을 군대에서 훈련을 받는데 요령도 없고, 사회에 혹독한 시련도 없이 학교생활만 하다가 군사훈련을 받으니 어찌 어려운 것이 하나 둘이겠는가?
대학 학군단에서는 연병장에서 훈련을 받다가도 담배라도 피우고 싶으면 피우고 화장실에도 가고 싶으면 가는데, 이곳 군 훈련소에서는 모든 것이 통제요, 구속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저녁을 먹고 동초를 두 시간마다 연속적으로 교대를 하여야 하고, 잠도 제대로 자 보기는 다 틀렸고, 안 그러면 며칠 되지도 아니하였지만, 새벽같이 구령 연습에 부모께 감사 인사드리고, 구보를 4Km이상 매일 뛰어야 하고, 학과출장으로 행군하고, 교육받고, 실습하고, 땅바닥에 뒹굴고, 먼지 덮어 쓰고, 한 명이라도 잘못하면 연대 기합 받고, 모든 것이 시계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돌아가야만 하는 군대 훈련하는 현장이다.
RNTC입영훈련이 연속적으로 마치 파도가 쳐 오듯이 일상처럼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포복을 하루 종일 훈련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심심하면 돌이 뾰족뾰족 솟아 있는 석벽 바닥에 집어넣어 계속 전진, 원위치를 조교의 입에서 나온다. 우리 훈병들은 그 구령에 맞추어 기고, 또 기어야 했다. 온 몸이 천근이요, 만근이었다. 이것이 훈련이라니 어쩔 수 없었다. 현역으로는 복무하지는 않지만, 이런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마는 정말 힘 드는 순간이었다. 자기 몸무게만큼 하중으로 석벽에 부딪히는 고통을 감내하여야 한다. 그것이 군대 훈련이다. 그래야만이 애국하고, 애족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인내하고 인내할 뿐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1년차 3주간 21일간을 구르고, 욕먹고, 두들겨 맞고 인간으로서 정말 곤혹스러운 훈련기간을 맞이하여야 한다. 우리도 엄연히 대한민국 육군 하사관 계급장, 특히 하사계급에서 붉은 색 계급이 하나 들어 있는 것이 틀릴 뿐 군인은 군인이다. 어떠한 고생을 하더라도 그 날짜를 채워서 프로그램을 완성하여야 퇴소한다.
저녁 늦은 시각에 도착하여 씻고, 저녁을 먹고 내무반 일석점호를 받았다. 일석점호 시간은 저녁 10시 정각에 각 내무반 앞에 동초가 서서 준비하고 대기하면 연락 받아 연대장이하 교관들이 참석하여 일석점호를 하는 것이다. 이 일석점호가 끝나야 취침을 할 수가 있다.
일석점호 시 지적에 걸리면 또 연병장 개인기합이 있었다. 연병장돌기이다. 말이 개인기합이지 한 명이 걸려도 그 분대는 단체로 연병장 돌기이다. 이래저래 기합 투성이요, 땀 덩어리이다.
오늘 밤에는 편안히 잠 잘 자려나 하고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에서 드러누웠다. 누가 나의 몸을 흔들어 댔다. 조용한 목소리가 나의 귓전에 들리었다.
“동생! 자나? 벌써 잠들었나?”
“예! 누구신지요?”
내무반 마룻바닥에 착 눌러 붙어서 피곤한 몸을 쉬고 솜뭉치처럼 잠들어 있다 깼다.
“동생 일어 나 봐라!”
“예!”
내무반 침상에서 허리 윗부분만 들어 일으켰다.
“아이고! 피곤하제. 피곤할 줄 알고 내 막걸리 받아 왔다! 마셔 보아라!”
“예∼엣! 막걸리라니요, 우리 구대전체가 기합 받을 일인데요. 이건 절대로 안 됩니다.”
“이 사람하고는, 내가 행정반장인데, 구대장區隊長은 모두 영외 근무라서 지금은 아무도 없다. 그래, 정 못 믿으면 당직사관인 실장님 모셔 올께 그러면 먹을래?”
“예.”
나도 간 크게 행정실장이 그날 당직사관인데 실장님을 모시고 오면 마시겠다니 정말 못 말리는 나이었다. 기간병 한 명이 매양 따라다녀서 금방 실장님을 모시고 왔다. 아니 이런 난리가 있나? 정말 상사님이 오셨다.
“아니, 누군데 내 없으면 못 마신다 카노, 그래 얼굴 좀 보자. 정반장! 동생 맞나?”
“예.”
“그래. 내가 오늘 당직사관이다. 사 온 막걸리 한 잔 하고 자 봐라. 내일 아침이 가뿐할 것이다. 오늘 포복훈련 했다며, 만신창이가 됐지. 걱정 말고 마셔라. 나는 간다.”
“예!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하하. 나도 참, 훈병이 당직사관까지 불러다 놓고 술 마시려 한 것이다. 그랬다. 막걸리 한 사발을 다 마셨다. 정말 피로에는 이것이 최고다. 어찌 막걸리 두 되를 나 혼자 다 먹는 단 말인가? 우리 구대 우측 침상 동료를 모두 깨워 한 잔씩 먹이었다. 자다가 술을 먹다니 심신이 최고도로 피로한 마당에 막걸리를 그것도 현역 행정반장이 지켜 주고 우리는 김치 조각에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시고 잠을 잤다.
아침이 되자 기상나팔 소리에도 거뜬히 일어나 오늘 일과를 준비하였다.
“어제 밤에 누가 막걸리 사와서 우리에게 주었노?”
“응.”
“아니 151번, 대단한 빽이 있네. 고마워. 정말 고마웠어.”
고향까마귀로 인하여 RNTC 훈병 동료들에게 내가 칭찬 받았다.
(푸른 숲/20100-2013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