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11.숙직실 술집
신작수필 |
11. 숙직실 술집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1976년에도 술을 많이 마셔댔다. 물론 초임지에 발령 받은 후에 처음 배운 술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 발령 받았을 때는 술을 먹기는 해도 잘 알지도 못했고, 이기는 방법을 몰랐다. 빌린 돈 이자 느는 것과 술만큼 잘 느는 것은 없을 것이다.
3월 1일자로 N초등학교 제4학년 담임을 받았다. 마치 초임 학교 때와 같은 학년이다. 인사이동으로 간 학교, 처음에는 매우 서먹하였다. 조금 지나면서 생활하게 되니까 여러 선후배 선생님들을 차츰 알게 되었다. 5학년 1반 K담임이 한 해 선배이었다.
6시 땡 하면 퇴근하여야 하는데도 숙직실로만 모이게 된다. 산골이라 어디 갈 곳도 없는 녹색으로 덮인 시골일 뿐이다. 여선생님들은 정시에 퇴근하지만 생활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산골 남자선생님들은 저절로 하나, 둘 모여 어느새 대여섯 명이 된다. 고용원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K선배가 선금을 내어서 막걸리와 라면 사고, 산골 속이라 고등어 통조림 사오게 한다. 이제 할 것이라고는 48페이지 동양화 카드놀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에 교감선생님도 늘 한 몫을 한다.
교감선생님도 동향인 경주에서 오셨으므로 하숙을 하는지라 집에 일찍 들어갈 리가 만무하였다. 혹시 오늘 누가‘한 잔 하자는 사람 없는가.’를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이러한 상황에 고맙게도 총각인 K선배는 구룡포가 집이라 오가는 것이 불편하여 아예 댁으로 가실 뜻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아직 총각이었고, K선배의 초교 동기생인 H선생은 덩달아 동기와 어울리니 이 어찌 산골짝에서 이러한 분들로 한 팀이 안 되고 배기겠는가?
오늘도 숙직실로 들어가 보니 벌써 카드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별로 뜻이 없어서 옆에서 소주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앉아 있게 되었다. 가져온 고등어 통조림을 따서 큰 그릇에 붓고 안주하려고 고춧가루를 확 뿌리고서는 막걸리 잔 비우기에 흠뻑 재미를 들이고 있다.
안주를 더 맛내려고 기어이 버나를 켜서 끓이기 시작한다. 이때 곁들어지는 것이 고용원 아저씨가 가져다 둔 김치를 꺼내 썰어 넣으면 고등어통조림 김치안주가 보글보글 잘도 끓어 참 맛있어진다. 너나 할 것 없이 출출한 뱃속을 채우려고 자동적으로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보고서는 씹은 소주잔을 자꾸 비우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교실마다 잡무가 끝나고, 연세가 지긋한 교무주임도 카드놀이에 깊은 조예가 있어 들어온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는데 조금 떨어진 이곳 학구인 상정리가 고향이었다. 한 팀은 교감선생님, K선배, K선배 초교 동기, 교무주임, 또 포항에서 출퇴근 하는 Y선생, 그리고 나 여섯 명이다. 모두가 일찍 퇴근하면 자동적으로 숙직실로 모이는 분들이었다.
어째 한 팀(3∼5명)으로 곧잘 이루어 카드놀이를 한다. 처음 시작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점 100짜리 고스톱이 시작된다. 어느 정도 낙전(落錢)이 술값으로 모아지고 나면, 이제는 라면 내기로 시작된다.
나는 화투치는 기술이 부족하여 겨우 낙전으로 술값 정도 떨어지면 포기하고서 구경꾼이 되고 만다. 집으로 퇴근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술과 술값내기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구경꾼으로 변하여 그저 하염없이 시간 죽이는 멍청한 사람이 되어간다.
이러한 일들이 다람쥐쳇바퀴 돌듯 일상처럼 되고 보니, 내자(內子)는 불만을 자꾸 쌓아가고 있다. 초임지인 바닷가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었는데 산골로 와서 자연히 나태해졌고, 화투에, 술에 매일 늦게 퇴근하니 불만에서 불만으로 이어졌다. 일찍 들어가는 시간이 새벽 5시가 되곤 하였다.
내가 집에 들어가면 잠자다가 깬 내자가 묻는다.
“어제 몇 시에 들어 왔지 예?”
“응? 몇 시에 잤는데?”
“저녁 지어 놓고, 선이와 TV보다가 한 10시에 잠이 들었는가 보네.”
“내 10시 반에 오니까 벌써 잠이 깊이 들었던데.”
내자가 말하는 시간보다 30분 뒤 시간으로 정한다.
“내가 그렇게 깊은 잠이 들었는가?”
“깊이 잠들었더구먼, 내가 와서 밥까지 먹어도 모르던데? 아마 누가 업고 가도 모르겠더라.”
나도 모르게 일상의 변명에 익숙하게 되어 버렸다.
“학교에서 도대체 무엇 한다고 그래 만날 늦어요?”
“응. 학습준비도 하고, 연구보고서를 쓰고, 이를 정리하고 이런 저런 일하다 보니까 자꾸 늦어지지.”
한 번 거짓말을 하고 나니까 자꾸 거짓말하게 되고, 잘 늘게 되는 것이다. 필요충분조건의 행위를 골라가면서 저지르니 결과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별다른 뾰족한 것 없이 일찍 퇴근하였다. 토요일에는 교감선생님도 경주로 가시고, 총각선배님도 일찍 집으로 가 버렸다. 집에 들어오자 말자 포항에서 온 H선배님 댁에서 연락이 왔다. 부부함께 초청한다고 하였다. 자연히 아이와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이 H선배의 생일이라고 해서 모이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여러 가지 반찬에 거나하게 차린 성찬의 생일상이었다. 술이 나왔다. 술은 양주(洋酒)였다. 당시만 해도 양주는 구경도 잘 못하고 살았는데 이 산골에서 생일에 양주를 내어 오다니 너무나 고마웠다. 양주를 마실 잔이 보이지 않았다. 술 이름이 아마도 뭐 “조니 워커(Johnnie Walker)”라고 하였다. 워커라면 신고 다니는 신발이 아닌가? 하하하. 나는 양주에 대하여 잘 모르니까 말이다.
조사를 해 보니, 조니 워커에는 레드, 블랙, 스윙, 골드, 블루 등이 있고, 시중가로서는 블랙라벨(오리지널 포장) 750ml가 2011. 9. 6.자로 홈플러스에서 250,000원 정도 한다고 하니 1976년 당시로서는 꽤 비싼 술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요즘 양주가 비싸서 여기 병뚜껑에 한 잔씩만 합시다.”
“생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양주병 뚜껑에 한 잔씩만 부어 주었다. H선배는 술을 잘 하지 못했다. 양주를 교감선생님에게만 병뚜껑 잔으로 한 잔 더 주고는 우리에게는 더 권하지도 않고 그것이 끝이었다.
아무리 술값이 비싸기로서니 시작한 술자리에 어찌 병뚜껑에 한 잔 주고서는 그것으로 끝이라니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는 H선배와는 술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비싼 술이라고 하니 많이 먹어 볼 수도 없었다.
술 마시는 형태로 농촌 막걸리로 배워서 소주로 가는 시기이었다. 언제 양주를 먹어 보았어야 술맛도 알고, 마시는 방법도 알 수 있지. 병뚜껑으로 조니 워커 양주 한 잔이 어디 목구멍에 통과했는지도 모를 그 순간을 어찌 양주 맛을 느끼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내내 곰곰이 생각해도 너무하였다. 소주생각이 간절하였지만 H선배의 생일축하는 그로서 끝이 나고 말았다.
동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인 공당, 이곳 N초등학교! 산골에 살면서 문화라고는 겨우 흑백TV 한 대 들여 놓은 것뿐이다. 퇴근시간에 이 핑계 저 핑계로 늦어지고 집에 등한시 하였다. 정말로 답답한 산골 생활이었다.
1976년 다방도 없고, 선술집도 맥주집도 없었다. 약국이나 약방도 없었다. 술파는 집으로는 동네 구판장에서 병 채로 파는 집뿐이었다. 이·미용실도 없는 산골짝에 늘어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공맹(孔孟)이 학문을 하는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
최고 좋은 술집(?)이 학교 숙직실뿐이었다. 갈 곳이 없는 시골이다. 겨우 막걸리에 김치 조각만 있는 조그마한 집이-상시 장사를 하는 집이 아니고 우리가 세든 집 아주머니께서 우리 교사를 위해 준비하는 술집-전부다. 그래서 내가 세든 집으로는 못 모이고 그저 학교 숙직실이 술집(?)이 되고 말았다.
(푸른 숲/20100-201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