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31)모찌기

청림수필작가 2013. 2. 23. 14:14

신작수필

31. 모찌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벼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당시에 곧 못자리관리를 잘 하여야 한다. 못자리를 가장 원시적 아날로그방식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늘날처럼 자동화된 모판 만들기가 아니었다.

 아무런 자동화시설이 없던 시절, 물못자리를 만들려면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아직 물이 찬 논에 물못자리를 할 논부터 정해야한다. 되도록이면 집에서 가까이에 있는 논을 정한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논이 소한들 묘답(墓畓) 다섯 마지기 논이었다.

물을 대기 좋은 도랑가 쪽으로 정하여 셋째 형이 제일 힘이 좋은 황소를 쟁기에 매우고 무논을 갈아엎는다. 물못자리를 한다고 하면 작은 동네에 어른들이 두 셋이나 나오고, 게다가 제일 어르신인 아버지께서 짝 가래를 들고 나오신다. 차가운 무논에서 바지를 걷고 셋째 형이 논을 갈아엎으면 초청도 하지 않은 붉은 고추잠자리들이 우왕좌왕 춤추면서 거든다. 간혹 일찍 나온 제비도 집 지을 진흙을 구하려고 하늘에서 기웃거린다.

 오전에 무논을 갈고서는 써레질을 하고, 물못자리 망을 만들기 위해 무논에서 삽으로 골을 만드는 것이 제일 힘 든다. 넓은 망이 구성되면 이제부터 셋째 형과 넷째 형이 무논에 엎디어서 막대기로 무논의 흙을 고른다. 이 때 무논에 물이 많으면 안 된다. 고르는 망이 보일 듯 말듯 하게 물을 잡아 두고서 아주 보드라운 망을 만든다. 이렇게 물못자리 망을 만들어 두고, 물을 잡아 둔다.

 5일 전부터 볍씨는 소금에 소독을 하고 싹을 틔어 놓았다. 볍씨가 촉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날 중에 바람이 불지 않는 새벽에 볍씨를 가지고 간다. 흙 모판에 고랑으로 다니면서 천천히 볍씨를 뿌린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골고루 볍씨가 흙 모판에 떨어지도록 뿌려 주는 것이 기술이다.

 평평하고 매끌매끌한 흙 모판 위에 뿌려진 촉이 난 볍씨가 고요히 자리를 잡아 앙증맞게 뿌리를 내리고 싹으로 자라게 된다. 마치 간난 아기가 자라듯 조심조심해서 물못자리가 만들어진다.

 물못자리에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촘촘히 새파란 벼 모종이 자라 올라온다. 며칠이 지나면서 물못자리 관리는 밤낮으로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중요하기 때문에 머슴에게 맡기지 아니 하고, 셋째 형이 직접 한다. 간혹 안본 척 하면서도 아버지께서 제일 많이 관심이 가게 된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해 논농사의 바탕이 물못자리를 잘 관리 하여야 하는 것이다. 모가 자라는 것을 관찰하고, 자라는 시기를 잘 맞춰야 모내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못자리에는 볍씨를 뿌려 놓았지만 볍씨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3∼4cm 정도 자라면 모판에서 피사리를 하여야 한다. 새파랗게 자란 모판에서 피를 찾아내어야 한다. 피는 뽑아서 모은다. 피는 벼가 아니다. 피를 키우면 옆의 벼가 자라야 하는 양분을 모두 빼앗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아예 물못자리 판에서 제거하는 것이 제일 좋다. 나는 어려서 물못자리에서 피사리는 못 하였다. 용케도 셋째 형과 큰 머슴과 아버지는 피를 잘 찾아내고 솎아내는 것이다. 피사리는 한낮에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물못자리 골마다 들어가서 머리를 쭉 빼서 엎디어 내려다보고 적확히 찾아내어야 한다.

 어느 덧 모가 4∼5cm 자라면 모를 쪄야 한다. 바로‘물못자리에서 모를 뽑아내는 것을 모찌기 한다.’고 한다. 모 찌는 날에는 좋은 짚을 추려서 끝을 작두에 잘라 묶음해서 모판 골마다 던져두고, 모판 골에 지게를 눕혀서 위에 걸터앉아 모를 찐다. 어머니는 모를 찌기 위해 오강을 깔고 앉아서 모를 찐다. 내가 어렸을 때 모를 잘못 찌면 혼이 난다. 모 찔 때는 뿌리째 뽑지 않으면 모의 목 부분만 떨어져서 혼이 나기도 한다.

 모찌기를 할 때 나는 뽑기는 할 수 있는데, 손아귀가 작아서 모춤인 단을 못 묶는다. 그저 꾸중만 듣고 모판에서 쫓겨 나오게 된다. 내가할 일은 바로 모판에서 찐 모춤을 들어내어 뿌리의 물이 빠지게 논둑에다 모으는 것이다.

 내 할일이 자꾸 많아진다. 어른들은 많고 모를 빨리 쪄서 묶음 만드는 것이 빠르면 들어 내지 못한 모춤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논둑 위에 모춤이 자꾸 모이면 저들끼리 일개 관병식을 한다.

 모내기 할 논은 갈고, 써레질을 하여 둔다. 논둑을 만들어 물이 잡힌 무논에 모내기를 한다. 찐 모를 모내기 할 논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모심을 논의 군데군데 적당하게 모춤을 던져두어야 모내기 준비가 완료 된다. 논둑에서 모춤을 던져 넣다가 논 가운데까지는 던질 수 없어서 가지고 들어가서 적당히 자리를 배치하여 놓아야 한다.

 모내기 준비가 바로 이렇게 모찌기로부터 시작이다. 얼마나 많은 과정을 그쳐야 곡식이 생산될 텐데 겨우 모를 쪄서 모내기할 논에만 갖다 두는 데도 이렇게 일이 많았다. 󰃁

(푸른 숲/20100-20130123.)

출처 : 푸른 숲/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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