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25)미나리꽝
신작수필 |
25. 미나리꽝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내가 세 번째 집에 살 때의 이야기이다. 집 앞 바로 대문 밖에 공동우물이 있었다. 조그만 우물이지만, 동네에서 모두 사용함으로 매일 물 퍼 올리기가 일이었다. 누가 우물가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물이 계속 퍼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당시 큰형과 함께 살고 있었다. 큰 채에는 큰형 집 가족들은 형님 내·외분과 조카·질녀들이 있었고, 사랑채와 각을 비껴선 집이 있어서 셋째 누이와 넷째 형, 나, 부모님이 함께 살았다. 즉 집은 한 집인데 가족은 대가족으로 살았다. 동쪽으로 큰형 집 대문이 있었고, 남쪽으로 우리 집 대문이 있었다.
밥 얻어먹는 거지들이 많았다. 우리 집에는 꼭 거지들이 두 번 들어온다. 동쪽 대문으로 와서 큰형 집에서 밥을 얻어 가고는 마을을 뒤로 돌아 남쪽으로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온다.
이때 셋째누이는 거지들을 무서워하였고, 아울러 상당히 싫어하였다.
“동쪽 문으로 왔잖아요?”
“정말 대문이 동쪽에도 있고, 남쪽에도 있네. 미안 하이더.”
그랬다. 간혹 거지들과 입 실랑이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비록 밥은 얻어먹지만 대다수가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을 어려서도 잘 보았다.
사람이 살면서 정말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었다. 농촌에 살면서 반찬 만들기가 제일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밭에서 무, 배추, 파(혹은 쪽파)도 있고, 당근, 우엉, 콩(잎), 들깨(잎), 호박(잎), 가지, 오이, 완두콩 등으로 반찬을 만들어 먹고 살았다. 사람에게도 좀 더 색다른 반찬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느 하루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새로운 반찬을 위하여 획기적인 일을 하였다. 집 앞 우물가에서 물을 퍼 올려 사용하고서는 그냥 논바닥으로 버리니까 그 물이 아까웠던 모양이었다. 바로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 버리던 그 논을 빌려서 미나리꽝을 만드는 것이었다.
빌린 그 논, 아니 미나리꽝을 만들려는 논이 우리 마을에서 제일 명당 집터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본래 집터로 말하면 양택(陽宅)이다. 바로 당대에 부자가 되는 그런 터이다. 그런데 왜 집터가 안 되고 그저 우물에서 물을 사용하고 버리는 허드레 논이 되고 말았는지 나는 의문이었다.
“아버지! 여기 터가 좋다는데 왜 집이 안 살아요?”
“그래. 얘야! 나도 들은 풍수지리는 알고 있단다. 그래 이 집터가 ‘조리 터’라서 그렇단다.”
“조리? 밥할 때 쌀 이는 도구 말인가요?”
“그래. 이 터가 조리 터라서 살림이 조금 부자가 되면 얼른 딴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단다. 과거에 이 집 주인이 잘 살게 되니까 욕심이 과해 너무 오래 살다가 망해 버렸단다. 자식도 죽고 패가망신이 되었단다. 그리고서는 이 터에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는단다.”
“아하. 그랬군요.”
내가 어린 나이에도 과연 무엇을 안다고 그랬을까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단히 잘 알았다는 듯이 행동을 하고 말았다.
미나리꽝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미나리꽝은 만들기가 참 쉬었다. 미나리꽝에 씨앗인 미나리를 뿌리째 사와서 작두로 썰어 뿌리면 되는 것이다. 이 때 논바닥에 소를 이용하여 쓰레질을 하면서 미나리 씨앗인 뿌리를 뿌려 두면 되는 것이다. 아주 쉬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우물가에다 주의 팻말을 하나 세워 두었다.
“이곳에서는 빨래를 하지 맙시다. 이곳은 미나리꽝입니다. 주인 백”
정말 그랬다. 과거에는 우물가에서 더러운 빨래를 하여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그러나 미나리꽝을 만들면서 아버지의 경고장 팻말을 보고 아무도 빨래를 할 수가 없었다. 빨래는 반드시 새보 머리에 가서 하였다. 불편함을 용케도 마을 사람들이 협조를 잘하여 주었다.
정말 신기하였다. 아무런 거름도, 비료도 주지 않았는데 그 허드레 물을 먹고 싱싱하게 잘도 자라 올랐다. 이럴 수가 있나 평소에 그냥 물만 고여서 못 쓰던 땅이었는데 뿌려 둔 미나리가 정말 잘 자라 주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 불러 모아서 낫을 들고 미나리를 베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동안 빨래를 하지 않아서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베어 둔 미나리를 골고루 나누어 드렸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 새로운 반찬의 생산지인 미나리꽝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푸른 숲/20100-2013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