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9)거머리

청림수필작가 2013. 2. 1. 10:36

신작수필

9. 거머리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어린 아이일 때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논〔水畓〕과 도랑에 살고 있는 거머리다. 이 모두가 시골에 농사짓고 도랑에 살았기 때문에 가장 혐오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도회지 사람이라면 도랑에 들어갔다가 다리에 물고 늘어지는 새카만 것을 보았다면 기겁을 하고 말 것이다.

 우선 거머리는 당시 시골 도랑에 상당히 많이 있었다. 특히 상시 물이 내려가는 도랑에는 거머리가 더욱 많았을 뿐만 아니라, 색깔도 검다는 것만이 아니고 진녹색을 띤 무서운 줄을 이루고 굉장히 컸다.

 도랑에 있는 거머리는 잘 물리지 않았지만, 우리 집 앞 조양 못으로 들어가는 도랑에서 대소쿠리로 고기를 잡고 나면, 물살이 세서 그런지 거머리가 많지는 않았고, 한두 마리 정도만 다리에 물고 달라붙는다. 그러면 도랑가에 나와서 거머리 박멸가(撲滅家) 우리 집 작은 머슴 삭불이가 아예 작은 꼬챙이를 가지고 따라 다녔다. 나의 새하얀 다리에 붙어 있던 거머리를 엄지검지 손가락에 힘을 주어 물고 있는 입을 떼면 떨어진다. 그 때 이 거머리도 꾀를 쓴다. 제가 남의 다리에 피를 빨아 먹었음에도 모른 척 하려고 몸을 동그랗게 돌돌 말아서 마구 도망가려고 한다. 그런 찰라 삭불이는 잡아다가 거머리 입에다 꼬챙이를 끼어서 그만 창을 뒤집어 도랑가 흙 위에 꽂아 둔다. 우리가 고기를 잡고 돌아오면 그 거머리는 창이 뒤집혀서 햇볕에 그만 말라 죽고 만다.

 또 물이 상시로 내려가다가 위 논에서 물을 대려면 도랑물을 가로질러 막아야 한다. 그러면 아래 금방 물 내려가던 도랑에 다슬기와 개구리, 바로 굵고 큰 진녹색 거머리가 물 마른 도랑에 기어 다닌다. 어째 다슬기를 줍는다고 도랑에 들어갔다가 거머리들이 총 공격을 하면 우리는 물 마른 도랑에서 그 거머리를 잡아서 모두 꼬챙이에 몸을 꿰어 뒤집어 꽂아 둔다.

내가 교사를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농번기를 이용하여 백형 댁에 모심기를 자주 다녔다. 모심기에서 무논 그러니까 항시 물을 대어 놓아서 거머리들이 많은 논에는 서로 피하려고 한다. 모심기를 정신없이 하다보면 다리에 온통 거머리가 시커멓게 붙어서 나의 피를 빨아먹기 시작한다.

 모 심다가 논둑에 나오면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뗀다고 야단이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일하러 오시던 아주머니 한 분에게는 거머리가 물지 않는다.

“아주머니! 다리에 어찌 거머리 한 마리 안 물고 맨다리로 나와요?”

“하하하……. 나는 사람 아니잖아요? 거머리가 어디 있어요? 하하하…….”

 이런 정말 사람(?)이 아닌가? 하하하……. 웃고만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같은 사람인데 어찌하여 거머리가 물지 않는단 말인가? 모기도 물리는 사람만 늘 물리고 만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머리가 사람 봐가면서 무냐?

“하하하……. 정말 내가 사람 아닌 줄 아는 가베. 내도 사람이지……. 왜 거머리가 나를 물지 않느냐 하면 내 피는 씹어서 아예 거머리가 알고 물지를 않아요?”

 정말 피가 씹은 사람도 있나? 오히려 내 의문은 더해만 갔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고놈의 거머리가 진짜 사람 봐가면서 무네. 내 새하얗고 알싸한 다리의 피를 쪽쪽 빨아 먹으면서 그 아주머니 다리에는 거머리 한 마리 안무니 참 이상도 하다.

 거머리란 놈을 욕을 하다가도 그 미물의 거머리가 대단한 놈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정말 모기도 그렇고, 이것을 보면 사람의 피가 씹은 사람이 분명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래 사람이 되고 거머리에, 무논의 거머리에 피 좀 빨려 준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고 시주 한 번 하는 것이다. 거머리에게 공양(供養)하는 것뿐이다.

 논둑에서 다리를 쓰다듬으면 그 새카만 거머리란 놈들이 두∼두둑, 떨어져서 논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다시 논에 들어가면 피를 빨아 먹으려고 말이다. 거머리 피 빨린 다리에 거머리 떼를 떼고 나면 구멍이 푹 뚫려 있어 한참 피가 나오고 그것을 맨손으로 쓰다듬으면 피가 멈추고 온통 다리가 벌겋다. 그리고 그 피는 이내 멈추고 또 괜찮아진다.

 그러나 모심기를 끝내고 씻고 집에 들어가 쉬면 다리는 근질근질해 온다. 피를 그만큼 빨려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서물서물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나중에 알고 나니 이렇게라도 한 번 사람 피를 빨려 주고 나면 피가 잘 통해서 혈류가 좋아 진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참 그 거머리만 보면 싫다. 내 고향 무논의 거머리는 지독하다. 사람의 피를 흡혈귀(吸血鬼)처럼 빨아 먹다니 말이다. 󰃁

(푸른 숲/20100-20130201.)

출처 : 푸른 숲/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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