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1집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45)시골 목욕
신작수필 |
45. 시골 목욕(沐浴)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인간은 태어나자말자 제일 먼저 씻기부터 시작한다. 물론 먼저 탯줄은 떼어야 어머니 몸과 분리되지만 절차가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시골에서는 목욕이란 말 대신에 ‘목간(沐間)하러 간다.’고 한다. 사실상 옛날로서는 시골에는 목욕탕이 없었으며, 목욕을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가 무척 궁금하였다.
남자라면 여름에 더우면 시도 때도 없이 우물가에서 등 멱을 할 수 있지만, 여자로서는 등 멱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시골에는 흔히 자연 보(洑)가 많아서 그 얼음장처럼 찬물에 몸을 담그면 땀은 물론이고 땀띠까지도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정말 시원한 자연 목간통이 있다. 얼마나 시원하면 어푸어푸하면서도 몸을 오래 담가 두지 못하고 나오고 만다. 아니 조금이라도 오래 담그고 있으면 입술이 새파래지고 입 속 이빨이 달그락거린다. 이내 소름이 돋고 만다. 그래도 물속에 이방인이 들어왔다고 버들치들이 몸을 건드린다. 다리를 펴고 있으면 물살에 어우러져서 내 하얀 살갗이 어른거리면서도 보이고, 발끝에 버들치들이 먹이인 냥 다가 와서 간질인다.
남자가 아닌 다 자란 큰 애기나 아녀자들은 밤이 오기를 기다려서 뒤 곁에 물통을 내다가 그 곳에서 몰래 목욕을 한다. 그러나 이런 목욕방법은 다 큰 애기나 아녀자로서는 여간 조심스러운 목욕이 아니던가? 특히 떠꺼머리총각들이 몸을 구경하려고 사생결단을 한다. 어련히 지키겠지만 ‘사람 백 명이 도둑 한 놈 못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지켜도 용케도 숨어서 훔쳐보고 만다.
우리 동네 여인네들로서는 아예 밤이 오기를 기다려 무더운 여름밤이 되면 단체로 보 중간에 멱을 감으로 간다. 무더위는 하도 극성스러워서 아녀자 손등까지 땀이 난다. 이런 혹서기에 물론 왕들은 계절에 따라 왕궁 위치를 바꾸겠지만 우리 서민들은 제 몸 하나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살았다. 다 큰 애기들과 여인네들은 피서를 위한 특별한 방법이 없는 한 그저 밤 개울에 몸 담그러 가는 길 밖에 없었다.
여름 무더운 여름밤이 시작되면서 어느 정도 앞에 사람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시간을 택하여 마을 앞 보 중간에 멱 감으러 가는 것이 유일한 피서이었다. 보머리에는 남정네들이 보 중간에는 여인네들이 마을의 밤 목간통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앞산(=密開山) 밤이 되면 아니 산그늘이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골 목간통은 붐비기 시작한다. 덩달아 소쩍새도 울고, ‘비∼비, 비∼쭁!’소리가 나는 이름 모를 새도 날아간다. 이때는 물론 힘센 장정(壯丁)을 멀리 양 끝에 세워서 지키도록 하고, 여인네들의 밤 목욕을 시작한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지 아니한가?
요즘은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좋은 시설에 손잡이 하나 틀면 찬물 더운물 마음대로 사용하는 시절이다. 그 옛날 선녀들의 날개옷을 감춘 나무꾼의 이야기처럼 아가씨들의 옷을 감출 총각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생겨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집에서도 물론 형수님들이 시집오고부터는 부엌문을 잠그고 시누이들과 다 큰 애기들이 함께 목간을 한다. 그때 시어머니는 바깥에서 망을 보아 준다. 얼마나 궁합이 잘 맞는 일인가? 고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그 옛날 고부간에 이렇게 척척 맞아 떨어진 것을 말이다.
요즘 더운 날씨에 수돗물은 오히려 따듯한 감을 느끼다 보니 그 시절 수정같이 맑고 얼음장처럼 차갑던 고향마을 앞 개울물이 그리워지는 것은 비단 나 하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도시에 살면서 샤워하고 나온 몸은 금세 땀으로 뒤 덮어버린다
우리 시골에서 보리 베기를 하거나 타작을 하면 보리 까끄라기가 몸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도 아니하므로 목욕이외 다른 방법이 없다. 농촌에서는 목욕하러 가기 전에 보리타작을 모두 마치면 이내 보릿짚에 불을 피워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도록 불 피워서 팬티만 입고 온 몸 전체를 불에 그슬리고 만다. 그러면 잘 떨어지지 않던 보리 까끄라기가 웬만하면 다 떨어진다. 이제 그 불길에 그을린 몸에 수건을 걸치고 얼음장 같은 찬물이 있는 보로 뛰어 간다. 하루 종일 보리 까끄라기와 싸워 오던 몸이 이 찬물을 보고 대단히 좋아하게 된다.
과거의 우리 여인네들 목간통이 있어서 평소 활용하였다. 여북하면 밤 여인네 목욕하는 물소리까지 시에 올려 져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다 씻고 살아야한다.
( 푸른 숲/20100-2012.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