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1집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34)칠월 칠석
신작수필 |
34. 칠월 칠석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우리 차성이문(車城李門)에 시집오신 나의 할머니가 계셨다. 경주김씨 명헌(鳴憲)의 여(女) 활허당(活虛堂) 김씨(金氏)이시다. 조선(朝鮮) 고종(高宗) 7년(庚午, 1870년) 7월 8일에 태어 나셔서 왜정 31년(庚辰, 1940년) 7월 8일에 돌아가시니 연세 71년이시었다. 생(生)에 삼남 일녀(三男一女, 伯父, 父, 叔父, 姑母)를 두셨으니 다복(多福)하심을 기리시었다.
나는 할머니 얼굴을 모른다. 아니 내가 늦게 태어나서 할머니를 모르고 살았다. 이제 이렇게 할머니를 찾는 것은 새삼 우리 집 열 번째 막둥이로 태어나서 내가 태어나기 전 꼭 10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와는 그 10년의 공백 기간이 아까운 것이다. 아니 우리 넷째 형님도 우리 할머니 얼굴을 모르기는 나와 매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넷째 형님은 할머니 얼굴을 몰라도 하등 개의치 않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태어나기 10년 전이지만 할머니가 간곡히 얼굴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인연으로 더욱 알고 싶어지기 때문에 이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할머니께서는 생일이 7월 8일이신데, 돌아가신 날도 7월 8일이시다. 어찌 이렇게 기이하단 말인가? 쉽게 말해서 태어나신 날에 꼭 71년 만에 그날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제사는 칠월 칠석인 7월 7일에 모신다. 태어나심에 돌아가신 날이 되어 전날에 준비하여 그날에 제사를 모시는 것이다.
그래 칠월 칠석이 무엇인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는 날이 아닌가? 전 세상의 사람들이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꼭 그날이 되면 비가 오고 만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 기일(忌日)이자 생일(生日)에는 반드시 비가 왔다. 일찍 아침부터나 저녁에 오든 아니면 밤늦게라도 꼭 비가 왔다. 비가 온다는 것이 바로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는 데 혹시 우리 세상 사람들이 보면 부끄러워서 아니면 세상의 까막까치가 모두 올라가 머리를 조아려서 저들의 머리가 칠월 칠석이 지나고 나면 꼭 벗어져 있다는 것이 알려 질까봐서 그런 모양이다. 이 또한 신출괴몰(新出怪沒)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래 칠월 칠석이면 우리 할머니 기일이자 생신인 날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머니 생전에 할머니 제사를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하여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 아버지가 둘째 아들이면서도 선조와 할머니 제사를 모두 모셨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조상의 제사 모심을 아주 좋아 하였다. 그 당시는 보리·조밥에 겨우 연명하던 시절이라 제사를 모시면 하얀 쌀밥인 메가 있고, 그래도 고기조각이라도 얻어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를 여름에 모시고 나면 하얀 쌀밥인 메를 시렁 위에 얹어 두었다가 낮에 내려 먹을 때 아버지 곁에 있으면 그 때 얻어먹은 메, 흰 쌀밥의 맛을 지금까지 도 잊어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내 지금 예순 넷에 이르러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탓하고 싶으랴마는 제사는 지내서 좋고, 지낸 사람이 좋을 것이다. 아니 조상을 위한 메를 올리는 것은 그저 종교나 그 무엇이라도 떠나서 자기만의 위로일 것이다. 제사는 정말로 귀신(鬼神)이라도 있어 차려 놓은 음식을 다 먹고 간다면 아무도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위로를 남긴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버리지 못할 양심의 전당인 것이다.
그래 진정 내 마음 속에 잊어버리지 못하는 칠월 칠석,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날이 아니라, 나의 10년 공백 기간을 잊고 살아 온 것에 대한 반성이라도 하는 의미에서 나의 할머니 활허당(活虛堂) 경주김씨 할머니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결코 칠월 칠석을 말이다.
( 푸른 숲/20100-201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