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1집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33)물레
신작수필 |
33. 물레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어머니, 나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나를 1950년에 나를 낳아 주셨기에 나는 어머니의 일하시는 모습을 일찍부터 보아왔다. 당시는 얼마나 사는 것이 어려웠으면 집 안팎으로 일을 모두 도우거나 직접 하셔야만 했다.
봄이면 화전(花煎)을 가는 것이 아니라, 송기를 꺾어서 “송기떡”을 만든다. 쑥을 뜯어 오면 쑥떡을, 콩으로 두부를 매일 만든다. 먹고 남으면 팔고 말이다. 또한 메밀로 묵을 만든다. 여름이면 오이로 냉채를 만들고, 밀은 삶아서 간식으로, 밀가루는 홍두깨로 국수를 만들고, 오디로 술을 담그고, 수박으로 화채를 만든다. 아이들 간식으로 옥수수나 쌀로 튀밥으로 만들어 둔다. 가을이면 감을 삭혀 먹거나 팔고, 고욤은 삭혀서 약으로 꿀처럼 퍼 먹인다. 겨울이면 수정과(水正果)를 만든다. 계피와 생강을 달인 물에 설탕을 타서 차게 식힌 후 곶감 쌈, 잣 등의 건지를 띄어 한겨울에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얼음처럼 차갑게, 꿀처럼 달게 마시게 한다.
어머니의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어머니의 일 중에 가장 힘든 일을 찾아 나서보자. 바로 물레다. 물레는 실을 뽑기 위해 만든 기계다. 그래 어머니는 물레를 사랑 하셨다. 바로 겨울이 시작되면서 찾아 하는 일이다. 겨울 내내 밤마다 “왜∼롱! 왜∼롱! 쏴아∼∼.”그저 연속적으로 아픔을 잊은 채 계속해서 물레질을 한다. 어떨 때는 내가 한 숨을 자고 일어나도 물레질이다. 그저 돌아가는 물레는 나의 단잠을 깨웠다, 말았다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개의치 아니하고 그저 물레질만 해댄다.
물레 타령은 물레질을 하는 데 힘을 준다. 해당화 한 송이를 와지 직끈 꺾어 우리 님 머릴 위에다 꽂아나 줌세.(후염)물레야! 물레야! 빙빙빙 돌아라. 워리∼렁 워리∼렁 잘도 돈다. /추우냐? 더우냐? 내 품안으로 오너라. 베개가 높고 얕거든, 내 팔을 베어라./사람이 살며 는 몇 백 년이나 살가나? 죽음에 노소가 있느냐? /건곤이 불로 월장재하니, 적막강산이 금 백 년이로구나./살살 바람에 달빛은 밝아도 그리는 마음은 어제가 오늘. /삼월삼일 이백 도홍이요, 구월구일 황국 단풍이라. /적토마 잘 먹여, 두만강 수에 씻겨 용천검 휘둘러 입신양명 할까.
이 물레로 뽑은 실은 큰 아들 장가보내고, 두 번째로 뽑은 실은 둘째 아들 장가보내고, 또 셋째 아들, 큰 딸 시집보내고, 둘째 딸, 셋째 딸, 넷째 딸, 넷째 아들, 다섯째 아들까지 시집, 장가보내 주마.
어찌 그리도 많이 낳아서 이렇게 고생을 하시나요? 아니다. 고생 아니다. 많은 자식 다 잘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잘 사는 아들, 딸 나오고, 그래도 세상에 태어났더라고 자식 키워 호강은 못하지마는 부모 찾을 날 올까 싶다. 이 아니 자식 많이 둔 팔자라드냐? 정말 물레질은 힘이 들고, 밤을 낮처럼 일을 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어머니 물레 손잡이는 닳을 대로 닳아서, 맨질맨질하다 못해 그저 부러지고, 다시 달아서 겨우 제 구실을 하고 있다. 손잡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물레는 물레로서 제 할일을 해야 한다.
물레를 가만히 들어다 보면 그 이름마다 제구실이 있다. 물레를 사용하는 첫 번째 단계는 “물레 축(굴똥)”을 받침대에 수평으로 끼워서, 손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 큰 물레바퀴에 실이 감기면서 회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섬유 뭉치가 감겨 있는 가락을 왼손에 쥐고 물레바퀴를 오른손으로 돌리면 된다. 이때 가락에 감겨 있는 섬유의 일정한 각도에 따라 필요한 정도의 꼬임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집의 물레는 나무로 된 여러 개의 살을 끈으로 얽어매어 8각의 둘레를 만들고 가운데에 굴대를 박아 손잡이로 돌리게 되어 있었다.
물레의 모양과 부분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르나 대략 다음과 같다.
꼭지마리 : 물레의 손잡이를 말한다. 동줄 : 물레의 바퀴와 바퀴를 연결한 줄(보통 왕골로 만듦)이다. 굴똥 : 물레바퀴 축을 이루는 나무로서 바퀴를 돌리는 중심대이다. 물렛줄 : 물레 살을 동줄로 얽어 만든 바퀴와 가락을 걸어감은 줄(물레를 돌리면 물렛줄과 연결된 가락을 돌리게 됨)이다. 고동 : 괴머리기둥의 좌우에 박은 2개의 쇠고리(여기에 가락을 꽂음)다. 가락 : 물레로 실을 자을 때 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감는 두 끝이 뾰족한 쇠꼬챙이다. 물레 바퀴 : 물레의 굴똥에 끼운 살을 동줄로 얽어매어 만든 바퀴이다. 가리장나무 : 물레 바탕과 괴머리를 연결하는 나무다. 괴머리 : 가락을 꽂는 나무 바탕이다. 괴머리기둥 : 괴머리의 앞뒤에 박혀 있는 2개의 기둥이다. 설주 : 물레바퀴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다.
이렇게 생긴 물레를 아버지는 그저 목수로서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 주신 물레를 가지고 그 긴긴 겨울밤에 함께 여생(餘生)을 보내어 버렸다.
물레야 돌아가는 물레야! 질곡(桎梏)의 한국 여성으로 태어나서 함께 여생을 마친 물레야 고맙다. 물레는 그래도 아무 말하지 아니하고, 나의 어머니와는 기어이 헤어지고 말았다.
( 푸른 숲/20100-201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