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1집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27)아버지의 우산
신작수필 |
27. 아버지의 우산(雨傘)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비가 오면 나들이객이 가장 필요한 것이 우산(雨傘)이다. 물론 햇볕이 많이 나면 여성이 필요한 것은 양산(陽傘)이다.
우리 아버지의 솜씨는 대단하셨다. 비가 오기 전에 아예 우산을 만드시고, 나막신을 만드시는 그런 열정이셨다.
내가 초등학교 때다. 비가와도 우산이 없어서 비료 포대기의 막혀진 부분을 쪼그라지게 집어넣어서 머리만 덮어쓰고 머리카락만 비 안 맞으면 되었던 시절이었다. 오늘도 비를 맞고 학교를 어떻게 가야하나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의 아버지는 자상(?)도 하시다. 나의 손에 명품우산(?)을 쥐어 주셨다. 웬일로 이렇게 고마우실 때가 있나. 웃비는 오고, 얼 떨떨 결에 주시는 우산을 받쳐 들고 학교를 갔다. 가는 동안에도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였지만은 우산을 주신 당신께서 너무나 고마워서 별다른 나쁜(?)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친구들과 우산을 같이 펴고서는 잘못된 점을 그제야 알았다.
우산은 본래 비를 받쳐주는 천(옛날에는 종이에 기름 먹인 것, 최근에는 비닐)을 지탱해 주는 우산살이 많아야하는데 당신께서 만들어 주신 우산에는 홀라당(?) 우산살이 네 개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우산을 쓰면 마치 김삿갓이 쓴 방갓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반 남․여학생들이 하하호호 하하하……. 웃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꼬지락 소나기가 와도 다시는 그 우산을 쓰지 않았다. 지금은 지났던 옛날 얘기지만 당시 나로서는 원망이 많았던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세상에서 최고입니다. 지나고 보니 아버지! 오직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명품우산(?)에 우산살을 박으려고 홈을 파시느라고 손가락을 다치시면서까지도 만드신 것이었다. 정말 이 우산을 저에게 씌어 주시려고 노력해 주신 당신이시기 때문이다. 수제품(?) 우산을 이 막내 손에 쥐어 주는 것은 아무도 그런 아버지를 못 두셨을 것이다. 정말 대단히 고맙습니다.(꾸벅) 늦게나마 구천에 계시는 아버지께 이글로 대신하여 용서를 구해 본다.
그 알량한 고집 때문에 꼬지락 비가 한 번 오면 비 오는 것을 그치기라도 기다릴라치면 오는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꼬지락 비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 옛날에는 책보자기에 책과 양철 필통을 함께 넣어 다녔기 때문에 비가 와서 뛰면, 뛰는 발걸음 수만큼 필통이 달그락거린다. 어찌 보면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계속 뛰어서 집에까지 오고 보면 책보자기 필통 속에서는 난리가 나고 만다.
집에 도착하자말자 풀어보면 필통 속의 연필이 몽땅 흑연이 떨어져 나갔고, 책과 공책은 비에 젖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책과 공책을 한 권씩 들어내어 아랫목에 늘어 말린다. 뜨끈한 아랫목에서 방금 물에 젖었던 책과 공책이 쥐가 오줌 싸고 간 듯 얼룩이 져 있어 매우 곤란 해졌다. 공책은 새로 살 수가 있어도 교과서는 그 당시 한번 사면 다시는 구하지 못하니 두고두고 책 때문에 신경이 쓰이었다. 이 모두가 좋은 것 아니더라도 변변한 비닐우산 하나 없는 것이 원인이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서 우산도 얼마나 좋은 우산이 생산되는지, 우산살이 많고, 천도 좋은 것이고, 마감 처리한 것 하며, 특히 손잡이에 스위치를 누르면 단번에 펴지고, 접으면 잠기는 그 편리함에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다면 그저 놀랄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서 만드신 우산 속을 들여다보면 기가 찬다. 방금 얘기한 스위치로 펴지는 것은 구경도 못할 것이고, 우산을 펴서 고정하는 곳에 송곳으로 적당한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고, 삼끈으로 못을 하나 달아서 우산 덮개를 편 후 내려오지 말라고 고정시키는 것까지 만들어 두셨다. 이 기발한 설치에, 하기는 그 모양새가 벙거지 모양이지만 그런 곳까지 손수 다 만들어 넣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노력이신가 말이다.
아버지 제가 겁도 없이 좋은 것만 알아서 당시는 아버지를 진짜로 원망하였는데 지금 오늘날 아무리 좋은 우산을 가지고 있어도 사각 벙거지 아버지께서 손가락까지 다치시면서 까지 만드신 세계 최고 명품우산을 따라 올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많이 부족하였습니다, 지금에야 후회합니다. 후회해 보아도 아버지 다시 못 뵈니 그것이 서럽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버지!
지금 그 우산이 있다면 “우산 박물관”이라도 차려서 보관할 것을 이제 때를 놓치고 말았다. 모든 것은 제 자리에서 빛을 발휘하고 그것만을 아는 사람만이 지속할 자유가 있을 것이다.
아! 지나간 일상생활에서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처럼 그렇게 흔하게 사용하고 함부로 버리지도 아니하셨으니 이 또한 생활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잘 산다고, 돈이 많다고 함부로 쓰지 아니하신다. 꼭 필요한 곳에는 돈을 사용하실 줄 알며, 후원도 익명으로 한 것은 우리 조상의 미덕이 아니겠는가? 작은 생필품 하나에도 자급자족하여 경제를 아끼고 운용하는 의지가 그 당시 작은 우산에도 아버지의 생활이 서려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안 자식을 용서 하소서.
( 푸른 숲/20100-2012.10.28.)